늘씬한 각선미의 걸그룹을 보며, 자신의 몸매가 갑자기 부끄러워져 다이어트를 결심한 적이 있는가. 유명 헬스 트레이너의 복근에 자극받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적은?
아니면 지난밤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본 야동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든지,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하는 멜로드라마 매력남의 음성이 귓불을 간지럽힌 경험은?
현실 속의 살아 숨 쉬는 인간관계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 '텔레비전'이나 남자의 성적 본능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포르노그래피', 여성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멜로드라마'와 '로맨스 소설', 어떤 과일보다 달콤한 '사탕', 어떤 아기보다 눈이 큰 봉제 '동물인형', 지방과 당분과 탄수화물을 정제해서 만든 '정크푸드'와 '패스트푸드', 영역 본능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선전선동'과 맹목적 '이데올로기'….
진짜보다 더 강렬한 매력을 지닌 이 모든 인공물은 중독과 집착 같은 인간의 과잉행동을 유발하는 초정상적인 자극에 속한다. 인간이 만든 이 모조품들은,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 우리가 먹는 음식의 종류, 사랑하고 싸우는 방식, 심지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교란해왔다. 섹스,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 나아가서는 인류 문명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이러한 인공물들의 위험한 자극에서 인간은 왜 벗어나지 못할까?
이 책의 저자 디어드리 배릿은 음식, 섹스, 영역보호 등을 위해 진화한 인간의 본능들이, 인구가 밀집된 도시, 기술혁신, 오염이 가득한 오늘날의 세계가 아니라 1만 년 전 사바나에서의 삶을 위해 진화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현대 식단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기름진 음식, 설탕, 소금에 대한 간절한 욕구는 그런 물질들이 희소했고 한 조각이라도 발견하는 것이 생존을 좌우했던 사바나 생활을 위해 진화해온 것이다. 문제는 본능은 강렬하고, 진화는 더디다는 것. 굼뜬 진화는 현대생활의 급속한 변화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반면, 인간의 끈질긴 충동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모조품을 만들어내 스스로 그 해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물행동학, 진화인류학, 심리학의 성과를 아울러 인간본능과 진화 사이의 단절을 설명하고, 1930년대 이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던 '초정상 자극 개념'을 가져와 그것이 현대 사회의 섹스, 건강, 국제관계, 미디어 등에 미치는 영향을 흥미롭게 탐구한다. 그리고 초정상 자극이 일으키는 비만, 중독, 전쟁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한다. 각각의 해결책은 구체적이고도 명쾌하다. 인간에겐 커다란 뇌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는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자제심이, 문명의 휘황찬란한 덫에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나온다고 그는 말한다.
/김선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