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쌀 관세화는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시급한 사안이 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쌀 관세화 문제는 농업통상정책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였지만, 쌀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쌀 개방의 정치적 민감성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 농정당국은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어려웠다.

쌀 관세화에 대한 검토는 199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정부는 쌀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 대신 1988~90년 평균식량소비량(513만t)의 1~4%를 10년간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MMA), 즉 의무수입물량 제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관세화 연기 10년이 지난 2004년 재협상에서 수입물량을 매년 2만t씩 늘리는 조건으로 관세화를 다시 10년간 더 유예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장개방 대신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은 UR 협정이 발효된 1995년 5만t에서 금년 34만8천t으로 늘어났고, 2014년에는 40만9천t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농산물중 국내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소비를 초과하는 유일한 곡물이 쌀이다. 의무 수입물량은 늘고 쌀 재고가 쌓여 가면서 그야말로 수급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2010년의 경우, 429만5천t 생산에 426만t을 소비하여 3만5천t의 공급과잉이 자체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여기에 의무수입물량 34만t을 더하면 총 37만5천t의 재고가 쌓이게 된다. 국내 소비량의 8.7%가 지난 한해에만 재고로 누적되었고, 2009년의 기존 재고량 100여만t을 감안하면 현재 재고는 단순 산술로도 140만t 수준이 됨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우리 국민 일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90㎏에 달했으나 식생활의 서구화로 이제는 73㎏으로 줄어들었다. 밥대신 빵과 육류 소비가 늘고 있고, 조만간 일본 수준인 70㎏으로 낮아질 것이다. 국내 쌀 소비 감소로 재고가 쌓여 가지만 쌀 의무물량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최근 국제 쌀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는 대신 국내 쌀 값은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어 관세화 여건이 호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세화를 채택할 경우, 우리나라는 200~39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제 시세가 국내 쌀 값의 180%인 점으로 보면, 관세화로 들어올 수 있는 수입량은 의무수입물량보다 적어질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쌀 관세화가 용이하지 않다. 국민 정서상 그동안 쌀은 개방불가 품목으로 인식되어 왔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쌀 무기론도 제기될 것이다. 즉, 쌀을 단순 곡물로 봐서는 안 되고, 식량 안보 차원에서 개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또한 향후 국제 쌀 가격이 변동될 수 있고, 농업기반이 약화되었을 때 쌀 수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도 대두될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현재 남아도는 쌀 정부수매에 소요되는 재정과 관리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과연 어느 정도 공급능력을 구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결국 현재와 같이, 쌀 관세화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경우 매년 증가하는 쌀 의무수입 물량과 쌀 재고 문제가 점점 심각해진다. 이로 인해 쌀 관세화 문제는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1일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이행되었고, 향후 몇 개월은 미국과의 FTA 비준 문제로 정국이 악화될 것이므로, 한미 FTA 비준이 처리되기 전 쌀 관세화 문제를 꺼내기 어렵다는 것이 농정당국의 입장이다. 이 경우 쌀 관세화는 2013년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고, 새로 집권한 정부에 짐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쌀 의무수입물량은 38만t으로 늘어나게 되고, 쌀 재고 누적으로 쌀 값은 떨어지고, 농민들의 불만은 더 커질 것이다.

쌀 관세화는 이미 늦었고,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부는 쌀 관세화 지연으로 인한 문제를 농민들에게 설명하고, 쌀 구조조정 및 적절한 보상 방안을 마련해 농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관세화가 지연되어 쌀 수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경우 쌀값 추가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농민들도 이해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쌀 관세화를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