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수 (미국 엘론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로 모든 국민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이미 무역, 경제분야에서 세계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문화면에서의 한류열풍도 서서히 퍼지고 있다. 국민이 힘을 합해 노력해야 할 다음 영역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대학교육개선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한 세계대학평가기관에서 나온 대학평가를 보면 서울대가 50위를 기록하고, 대부분 상위대학들이 100위권 안팎을 차지한데 그치고 있다. 이것이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단면을 보여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첫째,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건실한 대학이 많이 존재해야 한다. 한국 휴대전화가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폭넓은 내수시장이 필요했듯이, 노벨상을 타거나 세계에서 인정받는 학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대학은 또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식정보산업에 필요한 인력 창출에 도움이 된다. 지식정보산업이라 하면 언론, 광고, 통신, 컴퓨터 시스템, 소프트웨어, 데이터 베이스, 네트워크, 컨설팅, 금융 외에도 온갖 분야에서 정보와 지식을 생산 관리 분배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를 의미한다.

대학 수의 증가로 필요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필요한 학력을 갖춘 사람이 없어서 외국에서까지 인력을 수입하는 경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짜 문제는 고학력이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떻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 대학 4년동안 전공 공부를 무시하고 고시합격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만 매달렸다면 이것은 급변하는 미래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이나 자격증의 보호아래 경쟁이 없는 무풍지대에서 안일을 도모하는 졸업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배움에 대한 욕망이 큰 한국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축복이다. 한국은 선진국의 문물을 빨리 배워서 물질적 경제 성장을 짧은 시일내에 이뤘다. 한국이 이제는 지식산업에서 한 수 가르칠 입장이 되려면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토론과 비평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교육을 하려면 먼저 교수 1인이 담당하는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미국 대학의 경우에는 교수 이외에 교수법이나 교과(커리큘럼) 개발을 위한 많은 전문적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

셋째, 이런 조건을 갖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에서처럼 대학의 간부들이 자신이 이끄는 대학의 비전을 제시하고 뜻있는 이들을 감동시켜 기부금을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변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진 능력있는 사람들을 대학간부로 고용하고, 이들이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갖고 기부자들을 설득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과 대학생의 사회공헌 가능성을 감안하면 정부의 재정지원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조건 등록금의 반을 지원 하는 것보다는 학생이 처해 있는 상황과 대학이 창의력있는 대학생을 키우려고 노력을 하느냐가 참작되어야 한다.

넷째, 학생의 상황과 대학의 노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조를 해야 한다. 보조 심사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소요가 있기 때문에 전원 50%라는 획일적인 해결책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사불란한 독재주의보다는 시끌벅적한 민주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올바른 선택이라면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런 과정을 자꾸 거침으로써 국민 모두가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다양성을 수용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진 국민이 대다수이므로 지금까지 많은 국제적인 쾌거를 달성했던 것처럼 대학교육발전에서도 조만간 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