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휘 (아주대 교수)
미국 하원이 19일(현지시간) 국가 부채 법정 한도 상향조정안을 예산을 감축하고 정부 지출을 줄인다는 조건 하에 승인하였다. 이로써 재정적자 축소 방안을 둘러싼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사이의 힘겨루기가 일단 마무리되게 되었다. 지난 6월 존 베이너 연방 하원의장을 워싱턴 인근 앤드루 공군기지 골프장에 초청하기도 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되었다. 지난 4월8일 2011 회계연도 예산안의 대폭 감축을 달성했던 공화당도 다시 한 번 재정적자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하였다.

국가 부채 법정 한도 상향으로 미국 재정적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조치는 미국 정부가 더 많은 빚을 빌릴 수 있게 해준 것이기 때문에, 재정적자는 더 악화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연기한데 불과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재정적자를 죄악시하는 공화당은 행정부가 재정긴축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채무한도를 높여줄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지금까지 고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처리 시한인 8월 2일 이전에 오바마 대통령과 합의를 했던 것은 미국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지난 해 의회가 승인한 법정한도인 14조2천940억 달러를 이미 넘어서 현재 14조3천430억 달러에 이르렀다. 법정한도를 초과한 지난 5월 16일 이후 미국 정부는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할 수 없는 사실상 국가 부도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 위기를 피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는 연방연금에 대한 2천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중단하는 한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예치해 둔 1천억 달러를 인출하였다. 이 조치를 통해 국채 발행 시간을 8월 2일까지로 유예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채무 한도를 시한내에 상향조정하지 않을 경우 국채 이자는 물론 원금도 지급할 수 없는 국가부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미국 정부의 국가부도는 미국은 물론 세계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또한 무디스와 스탠다드 앤 푸어스와 같은 신용평가사들도 미국 국채가 누려온 최상위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겠다고 정치권을 계속 압박하였다.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될 경우 미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할 때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공화당이 시한인 8월 2일까지 국가 부채 법정 한도 상향을 거부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

사실 미국의 재정위기는 언젠가 터지는 시한폭탄과 같다. 미국 정부는 1달러를 지출할 때마다 40센트를 빌려야만 하며, 미국 국민 1인당 약 4만6천달러(약 5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2011년 예상되는 미국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99.5%에 달하고 있다. 세계 5대 경제대국 중에서 229.1%를 기록한 일본만이 미국보다 나쁘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적자는 지난 20년간 만성적인 재정위기로 고생한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악성이다. 미국의 예산적자 규모는 GDP의 9.0%로 일본의 8.6%보다 크며, 미국 정부가 2011년 지급해야 하는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가 GDP의 9.5%로 일본의 8.6%보다 역시 높다. 연말이면 반복되는 몸싸움을 통한 예산안 날치기 처리를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시한 전에 대화를 통해 합의한 미국이 부럽게 보인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국가 부채는 GDP의 30% 정도로 미국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하원의 정치적 타협이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