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희 숙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외래간호팀
'한울이네'. 수원시 팔달구 지동 성빈센트병원 옆에 위치한 이곳은 간판도, 문패도 없는 그냥 아담한 이층 가정집이다.

대문 앞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반쯤 열려진 문으로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두 명이 나온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심각하게 종알대며 마치 없는 듯 내 앞을 지나친다.

여기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부대찌개 맛이 일품이어서 가끔 들르던 곳이었는데 예전에 내가 알던 장소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내부 인테리어가 환하고 깔끔한 것이 아직까지 새 집 냄새가 솔솔 난다.

이곳은 지난 5월 성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에서 지역사회의 소외된 가정과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설립한 지역아동센터다. 빈곤한 가정의 맞벌이 부모, 한부모 가족, 소년소녀가장과 같이 양육과 보호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기까지 사회적 돌봄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러한 요보호 아동들은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방임돼 범죄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며, 삶의 자리를 찾지 못해 늘 방황하고 학습 부진에 의한 열등감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으로 자라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한울이네는 이러한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가정이 되어주고, 사랑과 관심을 느끼게 해주며, 학습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보충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가족 상담을 통해 가정내에서 아동의 존재감을 경험케 하고,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를 통해 영화 관람이나 문화탐방과 같은 집단 활동을 장려하며 건강하고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병원 신문을 만들기 위해 취재차 이곳을 방문했을 때 꽤나 어른스러워 보이는 남학생과 마주앉게 됐다. "공부하기 힘들지? 기말시험은 잘 봤니?"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재미는 있어요"라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면 고개를 숙인다. 무엇이 재미있단 뜻일까? 공부가? 난 아이의 표정에서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공부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조건들. 즉, 엄마 같은 수녀님, 누나 같은 선생님,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 등 내가 여기서 느꼈던 감정을 저 아이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리라.

한울이네의 입소 대상은 초등 1학년부터 중 3까지이며, 현재 19명의 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이제 개관한 지 두 달여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학습적인 도움밖에 주지 못하지만, 서서히 그 활동 영역을 문화생활, 사회적응 프로그램, 정서안정을 위한 부모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넓혀나가 아이들에게 보다 폭넓은 사회적 돌봄을 제공할 계획이다.

사실 이곳은 지자체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수녀님 한 분과 자원봉사자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원봉사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 돌봄을 주기 위해서는 함께 사랑을 나눌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미래의 희망이 될 이 곳 아이들이 친구처럼 함께 공부하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며, 수원을 이끌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짊어질 미래의 차세대 역군들이 이곳 한울이네를 회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행복한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