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100년 만의 폭우라고. 대통령도 그렇게 이야기하셨단다. 내가 서울에 53년을 살면서 이렇게 비가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맞다. 100년 만에 가장 많이 내린 비이기도 하고, 근 반세기만에 서울에서 내린 가장 많은 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내렸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환경론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동으로 한반도가 아열대지대로 변하고 있어 장마가 아닌 우기의 시대가 와서 비가 많이 온 것이라고 할 것이다. 아니 실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닌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렇게 엄청난 비가 내린 것은 우리들의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천대 때문이다. 이 끊임없이 흐르는 비의 정체는 눈물이었다. 속절없이 죽음에 이른 수많은 생명들의 저주의 눈물이었다. 그들의 영혼이 구천에서 떠돌다가 마침내 분노와 슬픔을 드러내며 미친 듯 울고만 눈물이 바로 이 비였다.

2011년 한반도는 근 100년 만에 가장 끔찍한 일이 발생하였다. 올해 초에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해 무려 60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어 인간이 파놓은 거대한 구덩이에 매몰되었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구제역에 걸린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인간의 육식에 대한 욕망이 그들의 자유를 속박하고 우리에 가두어 비정상적인 음식을 먹게 했기에 구제역이 발생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에 이른 것이다.

그들을 구덩이로 몰아넣을 때 최소한의 양심도 없었다. 마취제라도 맞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죽은 그들은 차라리 나은 죽음이었다. 그런데 가축 마취제가 떨어졌다고 그냥 구덩이에 묻혀진 생명체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생명체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우리가 이런 악독한 인간들이 아니었는데 그런 일을 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정말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 과거 백정들이 소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스님이 오셔서 독경을 하고 염불을 외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를 그저 농사일을 도와주는 가축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여 가급적이면 소 잡는 일을 금하였지만 피치 못할 공동체의 행사를 위하여 소를 잡아야 했다. 그럴때마다 소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가 극락왕생하여 훗날 축생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길 기원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문화였다. 그런데 이제 그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사라졌다. 평화로운 강에서 살던 생명들이 사라지고, 뭍에서 살던 생명들도 사라졌다. 뭍에서 사라진 600여만의 생명은 강에서 사라진 생명에 비하면 그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좋다!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 치자. 그 생명보다 인간의 생명이 중요했기에 더 중요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명복을 빌어줄 겨를이 없었다 치자. 그랬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명을 마감한 이후 우리 삶이 안정되었다고 생각되었을때 그들을 위한 기도를 했어야 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뭍에서 죽은 축생들을 위해 '포제'를 지냈다. 길거리에 떠돌다 죽은 행려자들을 위한 제단인 '여단'도 만들고 또 그들을 위한 '여제'를 해마다 지냈다. 인간에 대한 제사만이 아니라 '포제'를 통해 축생을 위한 제사 또한 지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내세의 삶을 빌어주었다. 이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가치이자 최소한의 양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린 어땠는가? 대다수의 국가지도자들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려주어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왜? 생명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내린 이 엄청난 비는 바로 우리가 버린 저들 생명체의 눈물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비가 끝나면 이번에 생을 마감한 고인들을 위한 기도와 인간의 욕망으로 사라진 생명들을 위한 정성어린 제사를 지냈으면 한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