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배 (문화체육부 차장)
지금까지 세계 미술시장 최고가 작품은 무엇일까.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반 고흐나 클림트일까. 아니다. 바로 미국 작가 잭슨 폴록이다. 지난 2006년 소더비경매에서 잭슨 폴록의 '넘버5(No.5) 1948'은 1억4천만달러에 팔렸다. 이건 단순히 개인의 기호에 불과할까. 아니다. 미국은 냉전시대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를 대표 문화 아이콘으로 밀었다. 근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유럽을 제치고 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한 뉴욕의 힘이 최근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세계 미술계도 새 판이 짜여지고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장이머우 감독의 개막 공연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올해 4월 중국 화가 장샤오강의 유화 '영원한 사랑'이 7천906만 홍콩달러(약 110억원)에 낙찰됐고 중국 현대 화단을 대표해온 치바이스의 작품이 4억2천550만 위안(약 700억원)에 팔려 중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 경매시장위원회(CVV)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경매시장 거래금액은 전년 대비 137% 증가한 76억 유로(약 11조6천370억원)를 기록, 세계 경매시장 비중이 2009년 24.4%에서 2010년 34.4%로 치솟았다. 이는 1950년대 이후 60여년간 세계 예술품 거래 양대산맥 미국과 영국의 아성을 깨뜨린 것이다.

지난 2006년 4.9%에 불과하던 중국의 미술시장이 불과 5년새 급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화교를 비롯 중화권 '큰손'들의 역할이 크다. 또 여기에 국가적 차원의 문화예술 지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는 문화예술의 상징적인 장소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보충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미술관과 박물관을 1천개 지을 계획이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설치작품 'TV는 키치다'(1996)가 올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422만 홍콩달러(약 5억8천만원)에 낙찰되는 데 그쳤다. 한국 경매 최고가 기록은 지난 2007년 박수근의 '빨래터'가 세운 45억2천만원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 스스로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얼마 전 자력으로 뉴욕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어느 국내 작가는 씁쓸한 독백을 내뱉었다. "요즘 잘나가는 중국 작가들 사실 몇 년 전 저와 중국에서 함께 전시회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전폭적 지원으로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더라구요."

이제 문화예술도 전방위적인 경쟁시대다. 전 세계 곳곳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요즘 작가에게 모든 걸 맡기기는 너무 버겁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가 전부는 아니다. 이제는 우리도 작품성이 뛰어난 현대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 시장에 대등하게 내놓을 수 있는 국가적이고 전략적인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간섭이 아닌 작가의 창작 지원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