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인천시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라이벌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의원'을 꼽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정치 여건상 그럴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라이벌은 말로, 희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라이벌, 그 자체가 역사적 맥락이고 궤적이다. 나이와 정치적 위상, 야망이 엇비슷하다고 해서 라이벌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전당대회장에서 격돌하는 한 때의 경쟁관계일 뿐이다.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까지는 못된다. 라이벌은 오랜 시간 정치 현장에서 함께 하고, 오랜 기간 국민의 희망이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정치적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 긴 정치적 경쟁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조건은 좋다. 사법고시를 거쳐 잘나가는 변호사 출신으로 정치권의 영입 대상 1호였던 오 시장은 흔히 말하는 '꽃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젊은 날, 노동운동으로 옥고까지 치르고 민중당을 거친 김 지사는 말 그대로 '가시밭길' 인생에 가깝다. 96년 15대 총선 때 YS에 의해 나란히 국회에 입성했고, 같은 모임에서 활동도 했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싸우는 서울시장과 경기지사의 정치적 파괴력이 어디 여느 보통 자리와 같은가. 대중성과 단박에 주자로 도약할 정치적 위상을 어느 정도 갖췄기에 가능했다. 한 사람은 수도권을 대표하고, 또 한 사람은 대구·경북 출신으로 수도권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점도 맞수로서 호조건이다. 50대 초반과 후반으로 낡은, 오래된 느낌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라이벌로 서기엔 아직 미흡하다. 이렇다 할 드라마가 없다. YS와 DJ의 '40대 기수론'과 같은 대반전의 신화도, 국민의 정서적 에너지를 모을 시대적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다. 여의도에 집중되는 한국정치의 특성상, 지방자치 단체장으로서 이 한계를 넘기가 어쩌면 역부족일 지도 모르겠다. 오 시장이 승부수로 던진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위력도 그런 점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원하는 대로 '복지 포퓰리즘의 종언'이 되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서울이라고 하지만 지역적인 한계에다가, 계몽적 성격이 강하다. 서울을 강타한 폭우와 태풍 무이파의 피해 여파로 달궈지지 않고 있지만, 곧 판이 뜨거워지긴 할 것이다. 만약 오 시장의 정치적 중간평가와 겹치게 되면 부분적으로 치열한 양상을 띨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국지전의 형태를 벗어나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김 지사가 '이 일을 가지고 주민투표까지 할 일인가'라고 나름 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진정한 승부처가 되지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오 시장의 정치적 수를 어느 정도 읽고 있는 그로선, '취지에 공감한다'는 선에서 더 나아가진 않을 게 틀림없다. 김 지사로서는 의회를 우회한 서울 주민투표를 또 다른 포퓰리즘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는 경기 도의회와 좋은 관계 아닌가. 오 시장도 '4년 뒤에 두 사람이 어떤 성적표를 받을 지 지켜봐 달라'며 섭섭한 속내를 애써 감추지 않고 있다. 그의 언급에는 김 지사에 대한 서운한 심사와 정치적 견제가 깔려 있다고 봐야 옳다.
정치에도 운동경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상대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반 성장하는 경우도 많다. 흥행성을 높이는 요소로도 작동한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에게 복지이슈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이념적 성향을 지나치게 전투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정치인 오세훈'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각인시키는 득은 얻게 될 것이다. 김 지사는 김 지사대로 소탈한 대중적 의회주의자로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다. 이제 두 사람을 빼놓고 한나라당의 미래를 얘기하긴 어렵다. 주목할 만한 정치적 동행이다. 그러나 라이벌, 그 첩첩이 힘든 길은, 두 사람을 넘어 국민이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