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환 (인천본사 편집경영본부장)
약속은 지켜질 때 그 의미가 존재한다. 지켜지질 않을땐 '헛약속', 즉 식언(食言)이요, 공약(空約)이 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사기다.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한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탈무드에서도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약속을 실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했다. 약속이행만큼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우린 수많은 약속을 하면서 또는 받으면서 살아간다. 약속이 잘 지켜지는 사회를 두고 '신뢰사회'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린 신뢰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이런 물음에 선뜻 답하기란 쉽지 않다. 너무나 많은 속임을 당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켜지는 약속만큼이나 크고작은 약속들이 헌신짝 버리듯 이행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 요즘 세태다. 정치인들은 더욱 공약(空約)을 남발한다. 정치인이라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을 통해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요즘 불행하게도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정치인들이 더욱 인기가 있는건 왜 그럴까. 참 아리송한 세상이다.

그럼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떻게 이행했을까. 일반 정치인들처럼 공약(公約)을 남발하고 공약(空約)하긴 매 한가지다. 인천을 좀 한정해서 살펴보면 역대 대통령이 쏟아낸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진 것이 손꼽을 정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한해 모든 예산의 1순위로 지원하고, 임기중에 인천을 동북아에서 가장 번영한 중심도시로 건설하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훗날 참여정부의 치적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성과를 내세우겠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결국 '정치적 수사'에 그친채 임기를 마쳤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초 인천을 방문해서 많은 약속을 했다. 우선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를 위해 TF팀을 구성해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도권 규제 완화를 들고 나온 것은 그의 핵심 공약이 됐다. 아직 임기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결국 공약(空約)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수도권 규제는 진작부터 재고해야 할 문제였다. 수도권 발전이 곧 비수도권의 투자를 빼앗아간다는 폐쇄국가의 허무맹랑한 논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권 집중문제로 고민하던 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의 예를 봐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들 나라들이 일찌감치 수도권 규제를 폐지 또는 완화를 통해 세계 경제의 선두주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판에 고작 10만㎢도 못되는 땅에 4천800만 인구가 밀집해 사는 나라에서 무슨 수도권이니, 지방이니 편을 가른단 말인가. 이 대통령이 퇴임후 진정 '경제대통령'으로 평가받길 원한다면 이 공약부터 지키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최근 인천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인천항과 인천공항 등 수도권에 위치한 항만과 공항 자유무역지역에서도 일반제조 공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개정이 추진된다는 소식이다. 마음 놓고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해서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지정한 인천의 자유무역지역 449만8천㎡에서조차도 단순포장이나 운송 보관만이 허용되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현장에서 제조, 조립해서 곧바로 공항과 항만을 통해 상품을 수출해야만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마당에 이마저도 봉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도권 규제로 인한 허울뿐인 자유무역지역이 된 셈이다.

현실이 이렇거늘 언제까지 수도권 규제만 고집하는 구시대적 사고자들에게 놀아날 것인가. 국가간에 FTA가 속속 체결되는 요즘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경제권은 한마당이 됐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국제 경쟁력에서 늘 뒤처지게 마련이다. 위정자라면 때론 비판받더라도 고집스럽게 해야 할 일이 있다. 국민과의 약속 이행도 그 중 하나다. 새삼 사목지신(徙木之信·위정자는 백성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