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는 왜 올라가는 건데?"
그녀가 진지하게 질문을 한 시점은 국방군이 애록기지 정상을 향해 인민군을 쳐부수며 뛰쳐올라가는, 바로 이런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한 장면에서였다.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아내와 같이 온 나를 탓하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폭우로 수도권이 허우적거리던 날 보았던 영화 '고지전'이었다. 6·25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를 모티브로 했다. 고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참호 속 구덩이를 이용한 일종의 무인포스트 방식으로 양측은 편지 전달을 부탁한다. 함께 넣어두던 술과 담배는 청탁성보다 훈훈함이 더 느껴진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남북 군인이 합창하던 '전선야곡'의 화음은 휴머니즘의 정수라 할 만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벨기에 전선에서 영국과 독일군이 합창했던 크리스마스 캐럴을 재현한 듯한 감동이다. 하지만, 안개가 걷히면서 양측 군인들은 명령에 따라 동족 살육을 해야 하는 현실로 급반전된다.
영화 내내 군대시절이 생각났다. 특수부대에 근무했던 나 역시 인민군을 만나면 애인이나 외박 이야기를 하며 교류했다. 양측 병사들은 맛난 것, 예쁜 여자 밝히는 예의 그런 '젊은이들'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교전수칙을 지켜야 했다. 자대배치 동기는 '적들'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 태권도 특기병으로 날씬하고 얼굴선이 곱던 장 상병은 국립대전현충원 묘비문에 '전사'로 기록되어 있다(6·25 이후 사망자의 묘비문은 대부분 '순직'이다. 북한군과 직접 전투한 경우에 '전사'로 처리된다. 천안함 사건 때 전사와 순직 논란이 있었던 것도 직접 전투가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인천시가 2009년 개최한 인천도시축전에 대하여 감사원이 예산낭비, 사업성과 조작, 불법 업무추진비 조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진상은 검찰 조사를 지켜볼 일이지만 일을 무리하게 처리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 듯하다.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입장과 이해관계 앞에 개인의 철학과 가치관은 무기력한 것이 세상살이인 듯하다. 소신과 줏대를 부리는 것이 어리석은 처세술이 된 지 오래 전이다.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하는 건 영악하지 못한 몸가짐으로 치부된다.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고지전'의 남과 북 군인, 군대 시절 필자의 입장, 국가와 국민을 위한 종이어야 할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양심과 사회적 비판을 생명으로 삼는 전문가도 부끄러운 정도는 별 차이가 없다.
세상살이 어찌 보면 하루 세 끼 먹고 살자는 게 아닐까. 이런 단순함이 현실에서 복잡해지는 데는 조직의 입장과 논리와 더불어 개인의 욕망도 한 몫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영업이익이 10조원이 넘어도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기를 써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예산과 조직과 경제성장률은 늘어나는 것이 절대선이고, 아파트 평수와 자녀 등수와 연봉이 떨어지는 건 인생패배로 딱지를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들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무한 경쟁과 선정적 비교로 내지르니 자연인들 온전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로 폭우가 쏟아지고 산이 무너지고 물이 솟구치는 건 인간의 작용에 따른 생태계의 반작용일 뿐이다. 정당방위라 하는 것이 적확하다.
건강을 해치고, 가족을 소홀히 하고 인간관계를 망치고, 때로는 양심을 팔면서까지 오르려는 크고 작은 고지는 생활 곳곳에 있다. 피할 수 없는 업보의 사슬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화는 끝났으나 비는 더욱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밤새 내릴 모양새다. 쏟아지는 비, 사나운 물결, 몰아치는 태풍으로부터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도 있지만 분명 떨어뜨려버려야 할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지키고 오르려는 고지, 그것이 진정으로 행복을 가져다주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