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9일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시황판에 1,700선이 무너진 코스피 지수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가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주가 폭락을 계기로 주식시장 안정 기금 마련을 검토하고 있으나 증권가에서는 그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에 의해 휘둘려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증시의 시가총액이 1천조원에 이르고 있어 21년전의 증시안정기금과 같은 대책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금융회사를 동원해 주가 하락을 막는 것은 관치에 해당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는 18일 증시기금을 조성한다면 비상적인 상황에서만 사용될 것이며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수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은행, 증권, 보험 등 전 금융회사들이 수백~수천억원의 돈을 출연해 기금을 만드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펀드 형태로 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평소에 자금을 약속받아놨다가 비상시가 되면 기금을 모으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이며 앞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렇게 조성한 기금을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주가 급락을 막는데 쓰겠다는 것이다.

   증권업계는 주식시장은 커졌는데 당국 생각은 20년 전 관치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생각하는 증시기금은 1990년 5월 주가가 폭락했을 당시에 시장의 회복을 위해 출범한 증시안정기금과 거의 같다.

   그때에는 증권사를 주축으로 은행, 보험, 상장사 등 총 627개사가 4조8천500억원 규모를 출자해 증안기금을 만들었고 주가가 폭락하면 주식을 사들여 증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외국인투자자들은 주가가 조작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 증시기금은 1996년 5월 해산됐다. 금융기관에는 주식으로 되돌려줬고 상장사에는 주식을 매각한 뒤 현금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일부 참여사는 반환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내는 등 잡음이 있었지만 2010년 2월 모든 절차가 마무리돼 증안기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21년 만에 증시안정기금이 다시 거론되는데 그 사이 시장은 매우 커졌고 변했다. 현재 외국인이 국내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인데, 시가총액으로 보면 300조원에 달한다. 수조원의 기금을 조성한다고 해도 외국인 주식시장 이탈 방지용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1990년 5월 말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은 87조5천150억원있으나 11년뒤인 지난 17일에는 1천58조원으로 불어났다. 따라서 주가하락을 막으려면 훨씬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도 "출자사가 상장사이거나 민간기업이라면 주주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실효성이 있으려면 기금 규모가 관건이다. 최소 10조원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이 돈을 조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증시 안정을 위해 다른 금융권이 동원돼야 한다는 데 적지 않은 반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권은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대출 등 서민금융과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에 이미 상당 금액을 출연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투신사들을 결국 무너뜨린 1989년 12.12 부양조치가 떠오른다. 시장은 자력으로 움직여야지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기금을 조성하면 시장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투자자들이 오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