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학실험실에서 내놓은 첨단연구결과는 학술적 산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업 원재료이거나 혹은 기존 산업계를 뒤흔드는 혁신상품으로 상업화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에서 산출하는 지식의 경쟁력에 따라 지역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결정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학이 지역혁신의 주체로 부각된 것은 미국경제의 성장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혁신시스템 역사를 보면 오래전부터 대학이 혁신을 주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국방연구를 비롯한 상당부분의 국가연구비가 대학에 투입되었고, 산업체의 연구도 일부 자체(in-house) 연구를 제외하고는 대학과 공동으로 추진되었다. 이랬기 때문에 미국경제에서는 대학이 혁신지식을 뿌려주는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상황이 달랐다. 1970년대 이후는 정부출연연구소가, 1985년 이후는 대기업 R&D센터가 한국 혁신시스템의 중심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은 지식공급자보다는 산업체에 인재를 공급하는 기관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그러나 지식경제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대학들에도 지식공급자라는 시대적 책무가 부여되었고, 공동연구와 기술교육 등을 통해 지역산업과 교류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경제의 성장엔진으로 자리매김한 산학협력에 다음의 대책들이 보완된다면 더욱 효과가 높아질 것이 틀림없다.
첫째, 대학이 주도하는 지식교류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서 산업계와 대학사이의 지식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미국의 샌디에이고가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유명해진 이유는 캘리포니아 대학(UCSD)을 중심으로 지식교류망이 튼튼하게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 지식교류망의 대표사례로서 '커넥트(CONNECT)'라는 모임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것을 통해 연구자, 기업가, 투자자들이 지식을 교환하고 합성하면서 수많은 성공 바이오 벤처기업들을 탄생시키고 성장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대학으로부터의 지식공급 유형도 다원화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지식전달 메커니즘 유형은 대학이 특정 산업체와 약속에 의해 지식을 전달하는 유형에 한정된 실정이다. 이 유형은 지식교류의 참여자들이 연구결과를 전유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대학지식이 일반 잠재창업자들에게 뿌려지는 소위 확산(spillover)의 효과는 거의 없다. 기업가정신이 풍성한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퍼드대학이 공급한 지식을 익명의 잠재창업자들이 학습하여 창업하고 그 성공에 의해 창업계보가 형성되는 것을 볼 때, 대학지식이 지역경제에 뿌려지는 통로의 다원화에 대해 생각할 시점이다.
셋째, 대학과 산업간 공동연구의 공간에 대한 계획이 설정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실질적인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대학실험실이 공동연구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실험실은 아직 열악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 본다면, 기업의 실험현장에서 공동연구가 진행되는 쪽으로 유인책이 필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기업실험실이 공동연구의 현장이 될 때, 산학협력의 효과가 기업에서 결실을 맺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연구로 계획되었지만 대학과 산업체가 실제로는 독립연구를 하는 관행도 이제 벗어나야 한다. 무늬만 공동연구로서는 이제 더 이상 실효가 없다.
이제 지역경제의 발전은 산학협력에서 시작하고 완성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지역에 기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