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오후 인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사업지구. 알루미늄 가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창호(58)씨가 20년동안 정든 작업장을 31일 비워야 하지만 아직 대체 작업장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근심에 싸여있다. /임순석기자

29일 오후 인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사업지구. 주인을 잃은 빈집들은 어느새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흉물로 변해 있었다. 군데군데 창문 너머로 빨래나 화분이 보이는 집들은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업시행사인 LH는 지난달 8일 사업지구 미이주세대 933세대를 대상으로 "8월 31일까지 이주를 완료하겠다는 '조정합의서'를 작성한 세대는 명도소송과 부당이익금반환소송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사실상의 최후 통첩이었다. 이후 대부분의 주민들은 조정합의서를 작성하고 이주를 완료했다. 하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은 한숨만 내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날 오후 사업지구에서 만난 알루미늄 가공업체 사장 김창호(58)씨. 20년 전 가정동의 한 나대지 50여㎡를 임대해 알루미늄 새시를 제작하고 있는 김씨는 정든 작업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31일이면 LH와의 합의대로 작업장을 비워야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대체 작업장 부지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작업장에 가설 건축물을 세우면서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식 사업장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영업손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김씨는 "무허가라는 이유로 3천만~4천만원에 달하는 영업 보상도 받지 못하는데, 땅은 못구했고 이주기간은 다가오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LH의 조정합의서 작성을 거부하며, 버티는 미이주세대도 적지 않다. LH에 따르면 160여세대는 조정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두 팔과 맞바꾼 집에 살고 있다는 오경순(55·여)씨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로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오씨는 10년 전 공장에서 일하면서 사고로 팔을 다쳤다. 일을 할 수 없게 된 오씨는 산재보상금으로 가정동에 3층짜리 집을 마련했다.

매달 180만원 정도의 임대료를 받아 생계를 꾸리던 오씨는 루원시티 사업으로 집을 수용당했다.

오씨는 "팔을 다쳐 임대업이 아니면 살아갈 방법이 없는데 보상금으로는 지금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의 집밖에 구하지 못한다"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 조정합의서를 작성하지 않고 끝까지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를 수거해 팔면서 초등학교 6학년 손녀를 키우고 있는 김모(73)씨 부부도 살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일단, 합의하지 않고 버티는데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이날 현재 루원시티 사업지구에 남아있는 세대는 약 250세대. 조정합의서를 미작성한 160여세대 중 100세대는 이미 명도소송이 진행중이며, 9월중 판결이 나온다.

LH관계자는 "31일까지 이주를 못했더라도 조정합의서를 작성했다면, 개별 세대의 사정에 따라 이주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줄 수도 있다"며 "단, 조정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세대는 9월 1일부로 명도소송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