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미국의 세금 논쟁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일개 신용평가사의 기습펀치에 휘청거릴 정도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심각한 터에 투자 천재 워런 버핏이 부자증세로 불을 지핀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하자 공화당은 전가보도인 '증세=경기침체'론으로 즉각 응수했다. 버핏이 "세율을 낮추면 일자리가 더 줄어든다"며 증세론을 거듭 강조하자 공급측 경제학의 리더인 아더 레퍼가 재차 반대 논리를 펴는 등 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세계증시 불안이 키포인트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치료불가인데다 유럽은 각국간의 이해가 맞물려 조기 수습은 난망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잇따라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도이치뱅크는 중국경제 침체 우려에 주목하면서 힘을 보탰다. 경제란 사람들의 심리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 만큼 비관적 전망이 우세할수록 불황이 현실화하는 법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대위기- 의 임박 예언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또한 미국의회가 올 11월까지 1조5천억달러의 예산감축안을 확정해야 하는 터에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까지 예정돼 있어 세금 논쟁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화두로 부상할 개연성이 크다.

한국은 수출액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이고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특히 높은 국가다. 이번의 증시 대폭락이 이를 방증한다. 나라 곳간의 건전성 여부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 채무는 올해 435조5천억원으로 2007년에 비해 무려 45.5%나 급증했다. 국가채무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 차원에서 정부가 대규모 재정투입을 한 탓이다. 현 정부내내 계속된 감세 조치로 재정수입 증가율이 다소 둔화됐음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4%로 여전히 양호한 편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것은 못된다. 공공기관들의 부채를 포함한 광의(廣義)의 국가채무액이 2010년 기준 1천637조원에 달하고 외채 또한 4천억달러에 육박한 탓이다. 저출산·고령화에다 양극화 심화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는 설상가상이다.

개별경제주체든 정부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가장 안전한 투자는 재무구조의 건전화다. 6·25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치부되던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튼실한 국가재정 때문이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이고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은 나라 곳간뿐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감세 철폐와 부유세 신설을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감세정책 지속과 2013년 균형 재정 달성으로 화답했다. 대책으로 일몰(日沒)이 도래한 비과세 감면을 최대한 종료하고 부족분은 인천공항공사 등 공기업 매각을 통해 벌충할 요량이다. 그러나 정부재산 매각을 통한 재정 확충은 이미 선진국에서 용도 폐기된 정책으로 바람직한 수단이 못된다.

비자금·소득탈루·뇌물 등 지하경제에 눈길이 간다. 지하경제 규모가 클수록 재정위험도는 높은 법이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사사하는 바 크다. 지하경제가 GDP에서 점하는 비율의 경우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20%이상이고 스페인은 19.2%이며 이탈리아는 무려 25%다. 국내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17~18%인 174조원으로 조세탈루액이 최대 29조원에 이른단다. 인터넷도박과 암시장에 흘러든 블랙머니가 280조원을 상회한다는 주장도 있다. 탈세분만 제대로 징수한다면 그동안 감세로 인한 재정손실 충당 및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균형 재정 달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사회정의 구현과 국가신인도 제고, 분배불균형 시정 등 부수효과도 크다. 노무현 정부의 사례처럼 증세로 인한 국력 낭비도 간과할 수 없다.

장기간의 개방경제화로 천문학적인 국내 자금이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벌부문의 급신장이 상징하듯 국내 지하경제 규모도 크게 신장됐을 것이다. 목하 정부는 역외(域外)탈세 단속 운운하고 있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국내외 탈세와의 전쟁 당위성은 점차 커지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