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동두천역에서 출발하는 경원선을 타고 연천으로 들어서다보면 너른 들판과 개천들이 한 폭의 그림같다. 동두천 일대의 미군기지와 여타의 군부대들이 아직도 한반도의 냉전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긴 하지만 그래도 한강 북부지역의 아름다움은 감동이었다.

경원선을 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연천군청의 요청으로 연천의 역사와 문화를 강의하기 위해서였다. 연천과 특별한 연고가 없는 필자가 연천을 가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연천과의 인연은 우리 산천과 문화유산 답사를 좋아해 연천 일대를 꽤나 많이 돌아다니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보니 연천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우연한 자리에서 지인들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연천군청의 강의 요청을 받게 됐다.

연천군청이 필자를 포함해 '연천군 바로알기'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연천을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한편으로는 경기도의 대부분 지자체들이 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연천이 소외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현지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공직자들의 의식과 변화는 지역의 발전과 절대 무관할 수 없다. 필자가 지금은 대학에 근무하지만 몇 달 전까지 수원시청에 소속된 공직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역이 변하기 위해서 공직자가 변해야 하고 공직자가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을 시작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듯이 자기가 사랑하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그 이전과 달리 더욱 헌신하며 공직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주 단순한 논리인 것 같지만 실제 이는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연천의 역사와 문화 강의 내용에서 과거의 역사만이 아니라 짧은 소견으로 연천의 미래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천은 엄청난 미래가 예고되고 있다. 연천이 오늘날 낙후된 것은 철저하게 분단 때문이다. 분단으로 인해 경원선이 막혔기 때문이다. 경원선의 단절은 연천 발전의 단절을 가져왔다. 18세기 이후 한반도는 물류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서울과 연결되는 6대로, 10대로가 만들어졌고, 교통이 좋은 지역이 대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때 철도가 만들어지면서 철도가 연결된 곳은 발달하고, 철도가 연결되지 않은 도시는 쇠퇴하게 된다. 지금도 KTX가 정차하는 지역은 성장하고 역사가 없는 곳은 쇠퇴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북관계의 개선만이 아니라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가스공급의 논의가 시작되고, 북한이 남한으로의 가스 수송로를 인정하겠다는 뉴스도 나오기 시작한다. 이는 분명히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가스 수송로는 러시아 지역에서 두만강 건너 동해안을 타고 내려오다가 원산에서 연천으로 올 수밖에 없다. 경원선의 부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금강산도 연천에서 경원선을 타고 갈 것이다. 경원선의 부활은 머지않은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연천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비롯한 역사자원과 한탄강 임진강을 비롯한 천연자연은 남북의 소통이라는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연천을 역사문화도시와 교통을 통한 혁신도시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필자의 강의와 토론을 통해 연천의 공직자들은 서서히 자부심을 되찾기 시작했다. 미래를 예견하면 준비를 해야 그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에 연천군민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연천을 지켜보기 바란다. 지금은 느린 것 같지만 향후 다가올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서 무서운 속도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연천 사람들 모두가 연천인임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만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오늘 필자는 또 경원선을 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