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묘하게 정치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면서 생긴 정치 공간이 말 그대로 난마다. 으르렁거리는 품새들도 예사롭지 않다. 곽노현 교육감 진퇴 문제까지 겹쳐 얽히고 설킨 방정식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권가도에는 일단 빨간 불이 켜졌다. 서울시장 보선에 380억원이 드는데, 김 지사마저 대권 도전을 위해 지사직을 내놓는 게 쉽지 않다. 여권에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경기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싸움이 될 것이다. 비장함과 결기가 뚝 떨어짐에랴.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도 여의치 않다. 사실 지난 주민투표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정치인이 박 전 대표다.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수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터다, 지지율 하락이 그 반증이다. 그러나 만약 지원에 나섰더라면, 아마 지금쯤 '박근혜 대세론'은 위기에 봉착해 있을 공산이 크다. 정치가 지닌 속성상, 가만히 놓아두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10월 서울시장 보선의 짜임새도 심상치 않다. 자칫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 마저 배제할 수 없다. 민심의 파고는 언제나 거칠고, 변화무쌍하지 않은가.
손학규 대표라고 해서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당내 경선을 치르고도 후보를 내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야권 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여럿 중 하나로의 자리매김이다. 지난 김해을 보선의 재판이 된다면, 전통 지지층의 비판이 거세질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진보성향이긴 하나, 무소속 출마가 확실해 보인다. 손 대표로서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후보조차 내지 못하면 누가 야당의 맏형이라 하겠는가.
그런데도 당장은 속수무책이다. 안철수 원장의 돌풍이 기성 정치를 형해화시킨 까닭이다. 안 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정치를 피해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가기는 이제 만만치 않다. 짧았으나, 그가 불러온 파장이 정치행위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봐야한다.
안철수 돌풍에 마구 뒤틀린 우리 정치의 바다가 가을을 많이 닮았다. 가을은 어디까지나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봄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봄꽃의 화사함과 달리, 가을 단풍의 화려함에는 어딘지 울음도 함께 머무는 느낌이다. 겸손과 절제, 고뇌가 어우러져 있다. 아마 숲이 빚어내는 마지막 아름다움의 뒤 끝에는 결국 익숙했던 것들, 화려했던 것들과 헤어져야 하기 때문 아닐까. 수원 광교산 형제봉 초입에는 박재삼 시인의 '산에서'라는 시비가 있다. '…/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로/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정치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참, 오묘한 자연의 질서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바다는 다시 건강해진다고 한다. 바람이 바닷속을 온통 뒤집어놓고, 혼들어 놓아 갯벌조차도 팔팔하게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 위력이 크면 클수록 정화기능도 동시에 커진다니, 자연이 지닌 아이러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정치 현역 시절, 입버릇처럼 얘기한 화두 비슷한 게 있다. '순리는 답답하고 지루하고 늘 지는 것 같고, 반대로 역리는 화려하고 돋보이고 늘 이기는 것 같지만, 역리가 순리를 결코 이기는 법은 없다'고.
이 가을, 낮은 곳으로 임하는 낙엽처럼 정치권도 조락의 시간을 피할 수는 없겠다. 언젠가 안철수 원장도 맞닥뜨리게 될 근원적인 문제이다. 검투장에 들어서는 순간, 벌거벗어야 한다. 가을 단풍이 마침내 제 속살을 내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시인들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을까. 올 가을, 정녕, 기도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