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예가 한자 문화권인 한국과 중국, 일본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이슬람 문화에도 서예가 있다. 이슬람 예술에서 서예는 건축 다음으로 중요하다. 동아시아 예술에서 서예는 여러 예술 장르 중의 하나지만, 이슬람 예술에서는 두 번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일신인 알라를 형상화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긴다. 그래서 불교나 크리스트교처럼 신앙의 대상을 조형물로 만들어 숭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조형 예술이 차지할 자리는 거의 없다. 이슬람 세계에서 서예는 코란을 옮겨 적는 수단이다. 필자가 이슬람 서예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방문한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에서다. 아야 소피아는 동로마 제국 당시 성 소피아 성당이었으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 지배하에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되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아야 소피아에 들어가면 중앙 홀 높은 벽 위에 코란 경구가 쓰여 있는 장중하고 우려한 서체의 이슬람 서예가 높이 걸려 있다.
이슬람 서예도 한국의 서예처럼 여러 서체가 있다. 모가 나고 장중한 느낌의 쿠파체, 둥그스름하고 유려한 나스히체가 있다. 나스히체는 작은 코란을 베끼는데 사용된다. 술루스체도 있는데 이는 건물의 비문에 사용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코란을 베끼는 종교적 행위의 하나로 서예를 한다. 그러나 명상을 즐기거나 취미 생활로 서예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이 점은 서예를 정신 수양 수단과 취미 활동의 하나로 즐기는 한국인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한국에는 대학에 서예과가 있고 많은 이들이 서예를 하고 있기에, 서로 상통하는 점이 많은 한국 서예와 이슬람 서예는 문화 교류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류는커녕, 이슬람 서예가 있는 것을 아는 이도 별로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아랍 에미리트 연방 7개 토후국 중 우리의 귀에 익은 토후국은 두바이와 아부다비다. 두바이는 석유 수출국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버즈 두바이'와 야자수 모양의 인공 섬 '팜 주메이라'로 상징되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토후국 경영으로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하더니 파산 선언을 하여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한 토후국이다. 아부다비는 우리가 원전을 수주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토후국이다. 그러나 샤르자도 산유국이지만 문화와 교육, 그리고 어린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토후국이다. 샤르자는 1998년 유네스코에 의해 아랍 문화중심 도시로 선정되었고, 이슬람교육과학문화기구(ISESCO)가 2014년 이슬람문화 수도로 지정하였다.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에서 경제가 매우 중요하지만 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류가 그 밑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나는 이번 주말에도 경기도 미술관을 방문하여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인 샤르자 예술을 만나러 갈 예정이다. 한국과 이슬람 세계의 교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처용설화에 나오는 처용을 역사학계에서는 이슬람 상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1천200여 년 전 신라인이 만난 이슬람 세계와 문화를 아직도 잘 모르고, 이슬람 하면 석유와 테러만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리는 샤르자 전시회를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