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학 연구원 상임연구위원)
한국 사회는 서울대 융합대학원 안철수원장이 일으킨 '안풍(安風)'의 풍향과 정체에 대한 논의로 온통 뜨겁다. 문득 김해자 시인의 '바람의 육체'가 떠오른다. 그 시의 한 구절- "새벽 산길 도망갈 길 없는/ 모퉁이에서 마주친 바람/ 그에게선 산하를 떠돌다 온 행려의 냄새가 났다". 시인은 바람과 대면(對面)하고 행색과 체취를 느껴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바람이 불지 않는 시간은 없지만, 빛과 소리에 취한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망각하고 지낸다. 바람이 사나운 소리를 동반한 폭풍이 되어 삶의 터전을 뒤흔들 때에야 새삼 그 위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뿐, 가뭇없이 사라진 바람처럼 바람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말끔히 지워버린다.

'안풍'이라 부르는 현상의 팩트를 복기해보자. 9월 2일 한 인터넷신문에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 검토'라는 내용의 기사가 한 인터넷 신문의 기사가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의 톱기사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뜨거운 화제가 되면서 바람은 시작되었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안 원장이 출마한다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될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앞 다퉈 내놓았다. 닷새간 정국을 강타한 '안철수 돌풍'은 지난 6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안 원장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상식적으로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안풍은 멎어야 했으나, 이번엔 대선 주자로 부각되면서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는 지지율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안원장에 대한 지지율은 고스란히 그가 '양보'한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이사에 대한 지지로 옮겨 갔다.

안원장에 대한 지지율 폭등사태 한국은 물론 외국의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외형적으로 그는 닷새 동안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다가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바람이 휩쓴 흔적은 역력하다. 위기감에 휩싸인 여야 정치권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황급히 제시하는가 하면, 대선과 관련해서는 대세론의 위기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그러니 여타의 대선후보들의 존재감은 아득해질 수 밖에 없다.

안철수원장에 대한 지지율 폭등사태를 '태풍'이나 '돌풍', 혹은 '쓰나미'와 같은 돌발적 자연재해로 비유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아직 그 본질에 직핍(直逼)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안풍의 몸통은 자연인 안철수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 원장은 행정이나 정치적 경험이 없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은근히 견제구를 날려보는 사람도 있다. 그가 행정이나 정치판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다는 능력 검증론을 제기해보지만 그는 일반인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정신을 발휘해 성공을 이룬 '걸어 다니는 위인'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걸어온 최연소 의과대학장,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인 V3백신을 개발하여 프로그래머, 국내 유수의 소프트웨어 CEO로, 카이스트 경영학 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 등은 과감한 도전의 역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풍'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안풍이 '돌풍처럼' 우리 앞에 출현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심각한 소통부재 상태에 빠져 있거나 소통의 메커니즘이 불구화돼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회적 소통의 임무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역할이요 책임이다. 사실 대의제에 입각한 정당정치의 위기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통은 대화(dialogue)이며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는 쌍방향식 문제해결 방식이다. 이는 결정된 내용을 통보하거나 설명하는 일방적 말하기 방식인 홍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화가 실종된 정치, 홍보를 소통이라고 여기는 사회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그 바람의 방향도 위력도 알 수 없는 불통 사회다. 이 점에서는 미디어의 책임도 적지 않다. 여론을 대변하거나 민심의 저류를 검침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