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물가상승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3.6%, 영국은 4.4%에 달했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던 일본마저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1%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를 기록했다. 중국 등 신흥국도 물가에 비상이 걸려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은 단기적인 수급문제만이 아니어서 더 걱정이 된다. 지난 2008년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문제가 잉태된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금리를 5.25%에서 2.0%로 낮추고 2009년 한 해 동안 GDP 대비 3.6%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물가 상승과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정책 선택을 한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 초에는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고 원화값이 급락하면서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가 함께 급등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수요압력까지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우리가 선택한 거시정책 결과로 이미 예견된 일이다.
최근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3.25%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후, 올 해 물가 목표 4%가 어렵다는 발언은 국민들을 더욱 당혹하게 한다. 물가가 오르면 생계비 상승으로 임금인상 요인이 된다. 임금 상승은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이 어려워진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자산 보유자를 유리하게 하고 봉급생활자의 실질소득은 감소시켜 소득분배도 나쁘게 만든다. 실질 이자율이 낮아져 금융저축도 감소한다.
우리는 70년대 중화학 공업의 과잉·중복 투자로 연간 물가상승률이 두자릿수가 넘는 인플레이션 경제에 살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추곡수매가 동결, 공무원 봉급 동결, SOC 투자축소 등 인기 없고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컸던 정책을 추진하여 물가안정 기조를 정착시킨바 있다. 80년대 중반 3저효과를 우리 경제의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안정화 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민생경제의 핵심인 물가 안정이 우리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함은 과거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총수요를 적정수준으로 관리하지 않고 수급대책만으로는 물가 안정을 이룰 수 없고 더욱이 행정규제를 통한 물가안정책은 경제에 왜곡현상만을 키우는 것이다. 지수상의 물가안정에 구애되지 말고 구조개선 등 시장기능 확대와 금리· 환율· 재정 등의 균형있는 거시경제운용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독과점 시장 구조 개선과 각종 불공정 거래 시정에 대한 정부 노력이 병행될 때 안정기조는 견고해진다. 정부는 9월부터는 물가가 안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작년 9월 이후 물가의 뜀박질이 빨라졌음을 감안하면 기저효과로 상승률이 잠시 주춤해질 수는 있지만 이를 두고 물가압력이 누그러진 것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이 입법 과정 절차 없이 부과되는 유일한 과세수단이라는 한 경제학자의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