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중소기업에 글로벌화가 중요한 이유는 좁은 시장이 넓어지는 매력 때문이다. 특히 첨단산업에 속한 중소기업일수록 좁은 내수시장을 극복하는 돌파구로서 의미가 크다. 네덜란드 필립스(Philips) 같은 기업은 자국 내수시장이 작았지만 다른 유럽시장과 북미시장으로 진출하여 의료장비 사업에서 성공했던 것이다. 시장이 넓어야 연구 개발에 투자할 동력이 커지는 것도 불변의 진리이다. 내수시장이 크면 기술발전이 앞당겨지곤 하는데, 특히 기술진화의 초기단계에서는 내수시장 규모의 효과가 큰 편이다.

의료기기 분야를 볼때, CT촬영기술을 발명한 미국은 자국 내부의 큰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GE(General Electric)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냈다. 한편 내시경 분야에서는 위암환자시장이 넓었던 일본의 올림푸스(Olympus) 기업이 초기의 세계시장을 주도하게 되었다. 기술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이렇게 내수시장이 큰 국가의 기업들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

큰 내수시장 덕택에 얻은 산업 주도권은 더 큰 연구개발 투자를 유인한다. 예를 들면 1900년대 초반까지 독일은 당시 대학의 연구 능력에 힘입어 화학산업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는데, 1920년대 들면서 미국은 독일을 제치고 화학산업에서 최강자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주도권 변화는 미국 정부와 산업계의 막대한 연구개발비 투자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 기세를 몰아 1950년 이후 화학산업에 뿌리를 둔 염료산업과 제약산업의 리더가 되며, 더 나아가 이들 산업과 연관된 바이오테크놀로지(BT)라는 첨단 영역을 개척하게 된다.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중반이었다. 이처럼 시장의 크기가 준 인센티브가 첨단산업의 주도권으로 연결되게 된다.

한국의 첨단산업은 태생적으로 작은 내수시장을 극복해야 하는 숙명적 과제를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다. 특히 바이오산업과 같은 개척해야 하는 업종의 중소기업에 글로벌 시장의 의미는 크다. 최근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덕택으로 작은 중소기업들도 세계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많아졌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글로벌 현장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중소기업의 글로벌화 경로를 보면, 제일 먼저 판로(販路)가 국제화되고, 그 다음에 인적자원의 국제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본과 경영시스템이 국제화된다. 대부분의 글로벌화 추진 기업들은 이 과정의 중간 어딘가에 있게 된다.

실제로 글로벌화에 임하는 중소기업에 묘책은 따로 없다. 그래서 무턱대고 '지사(支社)'를 설립하여 해외시장을 개척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독일의 헤르만 지몬 박사는 이를 '저돌적 방법'이라고 표현한다. 이 방법은 기업가가 사전 전략이나 구체적인 계획없이 저돌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여 성과를 일궈내는 전략을 말한다. 차후 이 저돌적 방법이 지속되다가 차후 체계적 방법으로 대체되는 것이 중소기업들이 글로벌화를 추진하는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중소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나서는 것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라는 뜻만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것에는 글로벌 판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된다. 바이오산업의 예를 든다면, 글로벌 제약회사의 움직임을 모르면서 우리 바이오산업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숙명적인 작은 내수시장 문제를 극복하려면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만드는 새로운 물결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소기업의 글로벌화는 상당기간이 필요한 험난한 사업이라는 점이다. 추진 과정에서 많은 상처가 발생하며, 기업 당사자는 엄청난 좌절을 이겨내야 하는 고단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첨단산업에 뛰어든 중소기업의 숙명이다. 숙명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즐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