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현 (가천대 사무처장 겸 교양학부 교수)
가을은 정녕 모순의 계절인가. 단풍 숲의 찬란한 장관은 바람에 맥없이 날리는 낙엽과 공존한다. 인생의 깊이를 아려 사색의 저편에는, 삶의 덧없음을 깨우치는 우수(憂愁)도 함께 깃든다. 단풍 빛에 취한 산행의 잰 걸음도 숲이 앙상한 가지로 변할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린 걸음으로 한껏 원숙해지고 넉넉해진다. 수확의 기쁨과 쇠락의 쓸쓸함이 불변의 진리처럼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가을, 참 모순덩어리다.

올 가을, 모순의 현주소가 우리 사회를 마구 뒤흔들고 있다. 영화와 소설 '도가니'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설움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성폭력 피해자인 청각 장애우들은 오늘도 지워지지 않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온전하다. 수화로 세상에 소리쳤으나, 사회는 애써 외면해 버렸다. '멀쩡한 사람들도 당하고 사는 데…'라는 집단 심리의 작동이었다. 그 사이, 고소 취하와 합의의 이름으로 가해 교사들은 법망의 그물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분노와 절망은 그들만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됐다. 힘 있는 사람들의 선의가 얼마나 큰 부조리와 타락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를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부정은 아름아름으로 베푼 작은 선의들이 쌓인 자리에서 웃자라나는 것임을 다시금 보여준다.

그 와중에 우리는 '짜장면 천사' 김우수씨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5년 동안 고아원에서 살다가 겨우 12살 때 거친 세상으로 나왔다. 몸 한 번 뒤척이기 힘든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면서 다섯 아이를 후원해왔다고 한다. '철가방'으로 불리는 짜장면 배달 일로 한 달에 70만원을 벌면서도, 더 어려운 아이들을 잊지 않은 것이다. 아마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을 나눔으로 위로받고 치유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는지. 하얀 헬멧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영정 사진은 우리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 여학생이 쓴 '다시 만나면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라는 마지막 편지는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꿈의 상실이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제 3지대의 '안철수 바람'은 또 어떤가. 견고했던 정당정치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제 1야당의 조직을 무력화 시킨 박원순의 등장은 그 바람이 도도한 시민의 힘임을 증명하고 있다. 저변에 깔린 것은 지도층을 향한 불만과 불신, 냉소의 다른 그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빈부·계층·이념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에는 절박함이 별로 없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선거 승패의 관성만이 작동한다. 학교로 되돌아간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의 경험과 정치력 유무만을 따진다. 달을 가리키는 데, 왜 손가락 끝을 바라보는 것인지.

대통령 측근비리도 여지없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마치 그 수많은 역사적 교훈을 조롱이나 하듯이…이 모순과 어리석음은 또 어찌 설명해야 할까.

하긴 세상을 매력적이고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 내고 있는 시인들의 눈에도 삶은 제각각이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신경림 갈대)' 삶을 울음에 비유한 신경림 시인의 시어와 시의(詩意)가 늦가을의 빛깔, 그것을 닮았다. 애잔한 일상의 진면목(眞面目)이다. 그러나 이 갈대를 보고 김소월은 다르게 노래했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김소월 엄마와 누나야 강변 살자)' 소월은 자연친화의 소박한 지족(知足)의 삶을 갈구했다. 달라도 여간 다른 게 아니다. 삶은 이처럼 모순과 불만의 연속이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는지….

곧 단풍철이다. 어느 해 단풍이 장관이지 않을 때가 있었겠는가. '서리 맞은 잎새가 2월의 봄꽃보다 더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 당나라 두목의 시 산행(山行)의 결구이다. 1995년 YS정부때 장쩌민 중국국가주석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단풍의 장엄한 아름다움은, 나뭇잎이 저를 버리고 다시 대지로 돌아감으로써 빚어내는 미학이다. 감탄과 울림은 짜장면 철가방과 소리 없는 수화와 같은 낮은 곳에 머문다. 낙엽이 질 때 비로소 가을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가을, 우리가 좀 더 겸허해져야 하는 이유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