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슬 (시인·협성대 영문과 교수)
1960년대, 건조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었던 우리 동시대인들에게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안개 낀 무진(霧津)으로 상징되는 몽환적 이미지로 마음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애초에 무진시의 모든 사물들은 안개의 품속에서 용해되어 실체를 상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무(海霧)가 밀려드는 무진시,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 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 왔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건물 자애(慈愛)학원도 그렇게 안개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진을 배경으로 한 소설 '도가니'의 첫 장면이다. 의미심장하게도 '거대한 흰 짐승'으로 상징되는 안개는 더이상 몽환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폭력적이며 야수적인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안개는 그로 부터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그물같은 것일게다. "철길가에는 때이르게 피어난 코스모스 무리가 창백하고 불안하게 그 안개의 그물에 덮인채 몸을 떨고 있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심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주일예배에서 "어둠이 한번도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성경 말씀이 들리지만 말씀이 봉독되는 중에도 안개가 무섭게 주변 세계를 빨아들이고 있으니 그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포의 어둠이다. '빛이 어둠을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 선과 악의 전도된 역학 구조가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도가니'는 기본적으로 장애아에 대한 성폭력, 더 근본적으로는 인권 유린의 문제, 강자와 약자의 힘의 논리, 사회적·윤리적 무감각, 정부의 안이한 대처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복지재단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인, 일명 '도가니법'이 발의될 예정이라고도 한다. 헤어날 길 없는 운명의 그물속에 갇혀버린 장애아들에게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철저한 법제화와 우리 모두의 각성된 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참 교육이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립학교잖아. 이사장 집안하고 연줄만 있으면 그건 괜찮대. 다들 그렇게 취직을 하고 야간대학원에 다니면서 특수교육을 잠깐 전공하면 된대.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니까. 보수도 좋고 근무시간도 널널하고, 이보다 더 좋은 직장 없을거라나." 아내가 남편 강인호 선생에게 '자애학원'을 추천하며 건네는 이 말은 복지법인재단, 사학재단의 구조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애초부터 참교육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5년 전에 퇴직을 하고 경기도 광주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는 교수 부부를 며칠 전 방문했다. 부부는 힘에 좀 부치겠다 싶을 정도로 꽤 넓은 텃밭에서 온갖 먹거리를 정성스럽게 기르고 있다. 김장철이면 김장 김치뿐 아니라 미끈한 하얀 무며 속 찬 배추 등 일용할 양식까지 제공해 주시니 한동안 연락이 안 오면 은근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번에 들려온 소식은 부인이 병이 나서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길로 당장 달려가면서 우리 부부는 역시 은퇴생활은 도심에서 해야 한다는 둥, 텃밭 가꾸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둥 곧 정년을 앞두고도 시골에 밭뙈기 하나 없는 우리 처지를 서로 위로하기까지 했다.

부인은 이제 건강이 좀 회복되어 우리는 시골 밥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부턴가 선생님은 시골 서당 선생 역할을 즐기고 계신다는 것이다. 형편이 어렵지만 공부에 뜻이 있는 학생들에게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 등 우리 고전뿐만 아니라 파스칼의 '빵세'까지 가르치고 계신다고 한다. 선생님 댁 문에는 '자애'나 '복지' 따위의 거룩한 현판이 아니라, '경아네 집'이라는 팻말이 손녀 사진과 함께 정겹게 매달려 있다. 학생들이 감사의 뜻으로 햅쌀도 좀 가져오고 옥수수도 쪄오니 이보다 더 따뜻한 마음이 어디 있겠느냐고 감격해 하신다. 물질적 대가없이 하는 일이니 이것이 진짜 가르치는 일의 기쁨인 것 같다고 역설하시는, 한 잔 술에 발갛게 물든 선생님의 얼굴에 소년처럼 천진한 미소가 번진다. 순간 이것이 참교육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현실적인 욕망이나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검버섯 핀 선생님의 주름진 얼굴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