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어제(음력 9월 22일)가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의 탄신일이었다.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수원 화성행궁과 함께 자리잡은 화령전에 가서 정조 어진에 참배했다. 백성을 위한 개혁군주 정조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이후부터 항상 탄신일에 참배를 했는데 이번 참배과정에서 느끼는 소회는 예전과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이 과연 정조가 생각하고 있던 백성의 나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그 이유는 최근에 전 세계에 빅 이슈가 된 미국 월스트리트가(街)의 시위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그것도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가에서 벌어진 시위는 가히 허리케인의 전주곡이다. 수만명의 시민들이 월가 중심부를 장악하며 시위를 하고 있지만 이는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태풍의 핵을 드러내며 세계 경제사 및 문명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고 본다.

이들은 처음엔 구조조정에 의한 강제 퇴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했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본질이란 결국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이었음을 월가에 모이는 국민들이 금방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흡사 자본가 혹은 중산층이었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고, 자본가들에게 속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1% 자본가들을 위하여 99% 국민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났음에도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금융자본가들을 비롯 1% 자본가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시장만능주의가 그것이다. 시장은 스스로 성장하고 운영되니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들은 시장에 대한 정보의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들 금융자본은 과도한 이익을 얻고 싶은 욕심에 파생상품을 남발하다 결국 붕괴직전까지 갔다. 이런 위기에서 그들이 꺼낸 것은 바로 정부가 금융자본을 도와주어야만이 나라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신자유주의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결국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천문학적인 국민의 세금으로 이들 금융자본을 지원했다. 그러나 살아난 금융자본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해 준 국민에게 고마움은커녕 거꾸로 그들을 착취하고 노예로 부리는 것을 지속하였다.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하긴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부자감세가 실시되고 복지정책이 사라진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우리 역시 1%의 세력들이 99%의 국민들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반면 정조시대는 달랐다. 소수 특정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 독점권을 혁파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게 하였고, 왕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지방 관아로 이관하여 더 많은 백성들이 국영 농장에서 일을 해서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국왕의 이익을 백성들에게 돌리고 소수가 아닌 다수의 백성들을 위한 계획경제와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전근대 봉건사회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다. 오늘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욱 인간을 위한 정책으로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정조의 탄신일에 화령전에서 느낀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는 사상과 정책은 처음에는 흥할 수 있으나 결국 인간에 의해 끝내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것에 적용된다는 것을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