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환 (인천본사 편집경영본부장)
인천 사람들이 착하기는 참 착한 모양이다. '쓰레기통' 발언, '수도권매립지 영구화' 소릴 듣고도 좀처럼 흥분하질 않는다. 시민단체나 일부 정치권에서만 몇마디 하곤 또 조용하다. 연일 악취로 잠 못 이루고, 집값은 떨어지고, 애들은 아토피에 고통을 겪어도 속앓이만 하는 모습이다. 인천이 '쓰레기 도시'가 계속돼도 정말 좋단 말인가. 정작 가해자인 수도권매립지공사는 시민을 향해 한방 때리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너무나 태연하다. 지역 언론에서 아무리 지적해도 꿈적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하다. 매립지의 영구화는 그들의 사명이란다. 시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수도권매립지는 또 무법천지다. 법도 없다. 허가도 받지 않고 마구 건물을 짓고는 관청 핑계만 댄다. 허가신청을 했는데 안 해줘서 부득이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곳은 허가 안해주면 막 지어도 되는 '치외법권지역'인가.

그 중심에 정치인 출신 조춘구 사장이 있다. 정부의 기관평가에서 D등급을 받고도 그는 불사조처럼 재선임됐다. 다른 공사의 사장들이 이 정도 평가를 받았다면 아마 벌써 집에 갔어야 했지만 그는 예외다. 여권에서 조차도 의아해 한다. 그는 재선임된 뒤 목소리가 더 커졌다. 얼마 전엔 인천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인천시민 및 정치권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는 "나를 쓰레기통에 박아 둔 것은 영구매립지를 만들라는 사명으로 알고, 두들겨 맞더라도 매립지를 영구화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향해선 "주민들 표를 먹어보겠다고 정치세력이 그냥 다 덤벼들고 있다"고 톤을 높였다. 결국 그는 이말 때문에 국감장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긴했다. 그러나 조 사장은 '힘있는 국회의원들'에게만 사과를 했지, '힘없는 인천시민'에겐 아직까지 말 한마디 없다. 정말 인천 사람들을 '쓰레기통 시민'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사실 수도권매립지는 인천으로선 암적 존재다. 1992년 2월10일 쓰레기가 반입되기 시작한 이래 꼭 20년동안 1억t 이상의 쓰레기가 매립되면서 연간 민원이 6천건을 넘을 정도로 시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반입량 비율로 보면 서울 46.67%, 경기도 37.46%에 비해 인천은 고작 15.87%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천시민들은 왜 우리가 타시도의 쓰레기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느냐는 피해의식이 강하다. 최근엔 청라국제도시의 입주민들까지 악취고통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조 사장의 표현대로라면 정말 쓰레기통에 사는 '국제시민'이 돼 버린 셈이다. 이 지경이니 매립기간이 종료되는 2016년부터는 더 이상 쓰레기 매립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목소리다. 오히려 '착한 목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조 사장의 머릿속엔 매립지의 영구화만 있는 모양이다. 시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시민들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그렇게 '무데뽀식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말은 흔히 인격에 비유하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격의 수준만큼 말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때 언행(言行)으로 평가할 때가 많다. 물론 그 판단이 다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말은 사람이나 기관을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 말 한마디가 상처를 주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한다. 옛말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조 사장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인천시민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아느냐고. 하기야 매립지공사의 임원 및 고위간부 32명중 3명만이 서구에 거주한다고 하니 지역민들의 생활고통을 어찌 알 턱이 있겠는가.

지금 필요한 건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런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시켜주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일이다.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정치권·행정기관도 좀 더 세심한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말 이러다간 저 아래 지방에서까지 인천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마침 송영길 시장이 악취문제를 체험하기위해 청라국제도시로 거처를 옮겼다고 하니 어떤 요구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차제에 '인천짠물'의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