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중도 입국해 한국말이 서툰 초샹궈(17)군이 지난 14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에 위치한 아시아 전통음식점 '다문화 샤브' 주방에서 다른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채 지시에 따라 그릇을 닦고 있다. /임순석기자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말'이 서툰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중도 입국한 자녀들은 여러 이유로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지난 14일 오후 5시 인천시 남동구에 위치한 아시아 전통음식점 '다문화 샤브'. 분홍색 앞치마에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에서 그릇을 닦는 초샹궈(17)군을 만났다.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한국말이 서툰 그는 다른 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지시에 따라 말없이 움직일 뿐이었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온 초군은 중도 입국 자녀다. 입국한 지 반년이 지나서야 남동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날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국어 수업을 듣고 바로 식당으로 일을 하러 왔다. 또래의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센터와 식당에서 생활하는 일상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초군은 식당일을 마치고 밤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자주 마주친다. 그는 "같은 나이의 또래들끼리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학교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커진다"며 "아직 한국말이 부족해 학교에서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고 속상해 했다.

초군은 또래 여느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그는 "학원에서 기타도 배우고 싶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싶다"면서 "하지만 한국어가 서툴어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초군은 한국에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지금 하고 있는 식당일도 나중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고된 식당일에 치질대로 지친 초군은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비닐 앞치마와 장화, 그리고 고무장갑을 벗고 식당을 나설 수 있었다. 그의 고단한 하루 일과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초군과 달리 '한국어능력 부족'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학교에 가는 것을 주저하는 아이들도 있다. 보통 중도 입국 학생의 경우, 서툰 언어 때문에 학습 능력이 또래들보다 떨어지기 마련이다. 한국어를 곧잘 해도 학교 수업을 따라갈 자신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쉐웬(17)군이 그랬다.

장군은 한국에 온지 2년이 지났다. 한국어 공부에 매진해 입국 후 1년만인 지난해 한국 국적을 얻게 됐다. 그는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장소에 가기 전에는 꼭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해야 한다. 극장에서 어떻게 표를 사는지, 도서관에서는 어떻게 책을 빌리고, 어떤 말을 해야하는 지 등을 미리 알아놔야 마음이 놓인다. 장군은 "아직 모르는 말들이 많고, 한국문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있어 학교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대상'이다. 그는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그럴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장군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그는 "중국에선 수학을 좋아했는데, 한국에 와서 한국어 외에 다른 공부는 전혀 못했다"며 "국어 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뒤떨어질 것"이라며 걱정했다. 안산이나 대림 등지에서 가끔 중국인 친구들을 만난다는 장군은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고 했다.



■ 중도입국 자녀들 둥지 '새날학교'

일상속 간단한 언어·문장 가르쳐… 한국생활 자신감과 꿈 키워줘

지난 11일 오후 1시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에 위치한 '새날학교'. 이 학교는 중도입국 자녀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곳이다. 한국에 온 후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냈던 중도입국 자녀들에게 이 곳은 학교인 동시에, 정규 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질문과 답을 주고 받으며 수업이 진행됐다. 겉으로 보기엔 소규모 학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곳의 학생들은 모두 중도입국 자녀들이다. 이자휘 (17)양 등 수업을 듣는 7명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부분 한국어를 배운 지 6개월이 채 안 되기 때문에, 수업은 아주 간단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문장을 읽도록 하고, 그 안에 있는 단어와 문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말'이 무슨 뜻이에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묻자,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머리를 흔들며 모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선생님은 다시 교재에 있는 문장을 읽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주말에 운동회에 갈 거예요. 여기서 운동회가 뭐예요?" 역시 학생들은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이 달력을 보여주고,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자, 학생들은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 "중국에도 (운동회)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강의를 진행하는 성미옥씨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단어를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며 "문법적인 부분보다는 생활에 관련된 말을 중심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이 곳에서 배운 이후로, 한국말과 함께 한국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국어를 배우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정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