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밀라노 델라스피가 거리.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이탈리아 밀라노 델라스피가 거리. 그 유명세를 증명하듯 고가의 패션 제품들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거리에 즐비해 있다. 이곳은 패션 관련 사업가들은 물론 쇼핑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늘 북적거려 발 디딜 틈이 없다.

특히 이 거리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규정되는 명품 제품들을 대거 취급하는 곳으로,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패션 기업들의 본거지이자 패션계의 새로운 신화를 꿈꾸며 야심차게 뛰어든 신입 디자이너들이 꿈을 키워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예전의 델라스피가 거리는 지금과 같이 화려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았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 유럽의 패션 제품을 만드는 하청 기업들이 주로 자리잡았고, 동성애자들이 득실거리는 슬럼가에 불과했다.

그런데 1960년 로마올림픽 개최에 발맞춰 이탈리아 정부가 이곳 매장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어둡고 우울했던 슬럼가는 명품거리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곳에 입점한 매장 가운데 신입 디자이너였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매장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 패션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우뚝 서게 됐고, 수십개의 최고급 패션 매장들이 잇달아 입점하면서 불과 40여년만에 이탈리아 최고의 지역상권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명품'으로 대표되는 델라스피가 거리도 과거 1990년대 후반 전세계를 휩쓴 경기불황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기존에 있던 패션 매장들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신입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던 매장들 역시 맥없이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속에서 델라스피가 거리 상인들은 넋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패션 관련 종사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매년 크고작은 패션쇼를 개최한 것이다. 이와 함께 지역 패션 관련 중소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독자적인 유통망 구축과 차별화된 제품 생산으로 전세계 쇼핑객들을 다시 불러모으는데 성공했고, 지금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취재팀이 찾은 델라스피가 거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베르사체', '구찌', '살바토레 페레가모' 등 최고급 매장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딴 신입 디자이너들의 매장이 인근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에까지 꽉 들어차 있었다.

우리는 운 좋게도 '2011·2012 신상품 패션쇼'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수백여명의 패션 비즈니스 관계자와 모델들이 응집한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패션쇼는 델라스피가 거리 곳곳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에게 공개됐다.

지역 패션 관련 업체들과 협력하거나 고유의 브랜드를 강화하려는 노력보다는 판매에만 열을 올리면서 소소한 유행 흐름만 따라가려는 국내 영세업체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전국상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델라스피가 거리의 상인들이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세계 패션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반면, 국내 대부분의 패션 매장들은 독창성과 희소성 대신 연예인들이 주도하는 유행 위주의 제품만을 판매해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드는데 실패하고 있다"며 "대규모 명품 매장과 경쟁하려면 지역 상인들이 반드시 힘을 합쳐 세계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영상·김종찬기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 기획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