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무성하던 나뭇잎들 가을바람에 다 날려가고 이제 앙상한 가지로 구십의 고개 마루에서 온 몸으로 울고 서 있는 아, 나의 어머니."

2일 오후 8시 선학동 영구임대아파트에 고남석 인천시 연수구청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노인이 직접 쓴 시를 읽는 고 구청장에게 노인은 '11월의 노래'란 시로 화답했다.

3주간의 영구임대아파트 삶 체험 마지막 날, 고 구청장은 그간 영구임대아파트 주민 31명과의 만남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어 베트남에 있는 부모에게 3살 난 아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다문화 가족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본다고 했다. 그의 방문이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장의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주민에게 변화의 씨앗은 심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긍정적인 변화는 하나씩 일어나고 있었다. 생활고에 지쳐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가장이 구청장을 만난 뒤 직장을 신청하고 금주를 다짐했다고 동사무소 직원들이 알려왔다.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교육청 영재로 뽑힌 한 초등학생은 여러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구청장은 익명으로 도움을 준 마음이 따뜻한 이들을 '키다리 아저씨'라 불렀다.

마지막 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동사무소, 구청, 보건소 직원들과 막걸리 집에 들어선 고 구청장은 막걸리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정치쇼라고 해도 저는 이들을 만날 것입니다. 영구임대아파트에만 그치지 않고 매입임대주택에 사는 주민들도 한명, 한명 만나 희망을 키워 나갈 것 입니다."

/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