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1970년대 미국에서 군용 항공기 추락이 잦을 무렵 이유를 밝히기 위해 많은 전문가가 투입되었지만, 결론은 고장은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고는 불규칙적으로 그리고 우발적으로 발생한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기계학의 발달로 모든 고장이나 사고에는 징표(signal)가 있고, 이를 분석하여 사고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더군다나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정비하는 시간계획 정비(time based maintenance)가 아니라, 항상 점검하고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상태감시정비(condition based maintenance)의 기법이 발전하고 있다. 예컨대 혈압이 높은 사람의 경우, 일 년에 한번 정기 점검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내내 혈압을 자동적으로 측정하고, 혈압의 수치 변화를 추적하여 언제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분석이 이루어져서 대안이 제시되는 것이다.

이런 과학의 발전 수준에 비해 우리의 사회공학은 수준이 낮다. 지금 우리 주변에 엄청난 굉음을 내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설명해줄 데이터가 부족하다. 경기도, 인천시의 경우 분명 재정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행태를 보면 과거의 번영기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변화에 대응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사회 변화의 징표를 보여주고 있다. 박원순 시장 당선은 개인에 대한 인기 못지않게 무엇인가 바꾸어보자는 시민사회의 기대감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시민사회를 이해하여 줄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이 담겨있었다. 조직화된 정당인의 선거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현대 정보사회에서 이러한 '마음'과 '생각'이 결집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마음이 모여 거대한 정치권력의 구도 개편이 주도되고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와 인천시는 한 걸음 늦게 움직이고 있다. 생명 과학의 영역에 정치인의 시각으로 도지사가 '세계 최초'에만 집착하고 홍보를 하는 모습에 도민은 실망한다. 강연과 강의를 통해 '입'으로 알리기를 하기보다는 '일'의 성과를 통해 감동을 주기를 기대하는 시민사회와 단층이 있다. 아직도 시장이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늪에 빠져있다는 인천시민사회의 푸념에 시장은 귀를 닫고 있다. 개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던 취임사와 별개로 여전히 인천은 개발의 기회를 찾아 틈새를 헤매고 있다. 각종 연대 모임이 있지만 정작 정책에 대한 연대가 아니라 인맥의 연대일 뿐이고 선거를 위한 연합일 뿐이라고 폄하되고 있다.

정당이 선거과정에서 무력해지면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가 연속된 징표를 통해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그것을 정치권에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정치 전략적 해석만 난무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변화를 직면할 자신감이 없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고장의 원인을 모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책임 추궁이 두려워 그것을 은폐하거나 엄폐하는 것 역시 더 큰 문제를 잉태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철도 사고가 잦자 이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여기의 최종보고서를 보면서 매우 아쉽게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우리의 철도에 RCM(Radar Coded Message)이 도입되어 실시간 소음이나 진동을 측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데이터를 축적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좋은 장비가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수준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 대표 기구인 정치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민사회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시대의 화두인 복지가 국가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몇몇 대통령 후보자로 거론되는 개인의 공약 차원에서 개발되고 있다. 그러면서 연말의 시점에 그리고 내년 선거에 대비하여 의정활동보고회만 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홍보만 잔뜩 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좋은 징표를 보내고 있건만, 이를 모르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발전이 시민사회의 발전과 유리될수록 시민의 공동체적 삶이 더 힘들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는 정치 개혁을 위해 시민이 나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