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 11월 2일 연천군의 명예군민이 되었다. 연천의 상징이 된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아슐리안형석기 모양의 기념패에 필자가 연천의 명예군민이 되었음을 알리는 글귀가 선명하게 있었다. 평생을 수원에서만 살아온 필자가 연천의 명예군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상 인연이 연천과 끈을 주어서인지 군수님께서 직접 필자가 명예군민임을 선포하시고 연천 공직자들에게 박수를 부탁하셨다. 참 기쁘기 그지없었다.

필자는 약20년전부터 우리 역사의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전국을 답사하기 시작했었다. 그 과정에서 찾은 곳이 연천이었고, 연천의 자연환경과 다양한 문화유산에 감동과 슬픔이 교차했었다. 연천역의 급수탑과 끊어진 경원선 대광리역에서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보았고, 경순왕릉과 숭의전에서 힘없는 나라의 슬픔을, 미수 허목 선생의 묘소에서 조선후기 실학의 태동을 느꼈으며,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우리 민족의 문명이 세계 수준에서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자부심을 느꼈었다. 이곳이 바로 우리 한반도의 중심이자 향후 통일코리아의 중심이 될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연천 답사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천을 어떻게 하면 문화적으로 혹은 도시 전체가 활기를 띠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았다. 그런 고민속에서 새롭게 보였던 것이 바로 '적벽(赤壁)'이었다.

적벽은 흔히 지리적 표현에 의하면 추가령구조곡에서 발생한 강변의 암벽이다. 용암줄기가 한반도 중심부를 지나가며 형성된 추가령구조곡에 한탄강과 임진강이 연결되었고 자연스럽게 적벽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정도의 표현으로 적벽을 규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적벽은 우리 자연유산 중에서도 그 수위를 정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래서 필자는 저토록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결론은 바로 세계복합유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세계유산'은 유네스코 산하의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유산인데, 이 유산에는 '세계문화유산', '세계자연유산', '세계복합유산'이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은 경기도에 있는 '수원화성'을 포함하여 9곳이 있고, 세계자연유산은 흔히 제주도로 통칭되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있다.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은 있는데 '세계복합유산'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복합유산이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유산이기에 우리나라에서 신청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연천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복합유산을 신청할 수 있는 자연과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너무도 아름다운 적벽과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그리고 임진강에 있는 고구려 성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의 환상적인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는 몇 년전부터 '남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2012년 상반기에 유네스코 이사회에 등록서류를 신청하기로 하였다. 현재 전문가들이 보는 견해로는 등록이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경기도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경기도는 남한산성을 마무리하고 연천의 유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신청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실제 우리가 관심이 없었고, 우리 산하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라서 연천의 적벽의 가치를 몰라왔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듯이 우리는 경기산하의 자연이 이토록 세계적인 것을 몰라왔었다.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실제 전곡리 선사유적만으로도 세계유산 신청이 가능하지만 연천의 자연을 세계에 알리고 보전하기 위하여 복합유산 신청이 타당하다. 만약 연천이 세계복합유산의 도시가 된다면 분단의 상징도시였던 연천은 이제 평화의 도시, 문화의 도시, 자연의 도시로 거듭 태어나면서 경기 북부지역 발전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제 적벽과 선사유적지 그리고 고구려 성의 가치를 알기 시작하는 노력이 시작되었으니 전문가들의 고견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새로운 세계복합유산을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