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갑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장)
중국 지린성 류허현(柳河縣)에는 경기도의 마을 이름을 붙인 '경기툰(마을)'과 '가평툰'이 있다. 그곳에는 경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난 10월에 그곳에서 만난 서덕환 할아버지는 올해 84세로 수원 비행장 옆에 살다가 1940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지금까지 70년간 경기툰에서 살고 있는 분이다. 서 할아버지는 쩡쩡한 목소리로 젊었을 때 자신이 경기툰을 이끌어 왔다면서, 남자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며 대낮부터 술을 권하였다. 평택 출신의 최봉화 할아버지는 86세 나이인데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고향을 평택시 포승면 석정리 검은 돌 마을이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40년대 초 일제는 만주에 가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으며 땅과 집을 주겠다고 조선인들을 회유하여 약 5만여명을 집단 이주시켰다. 경기툰은 1941년 수원사람 25호와 평택사람 25호가 집단 이주하여 정착한 마을로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왔으나 한 마을에 정착하였기에 굳이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경기툰이라 마을 이름을 정했다. 가평툰은 1943년 가평 사람들이 집단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이외에 광주·용인 등지의 사람들도 집단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1945년 해방 후 다른 마을은 해체되었으나 경기툰과 가평툰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주 초기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

경기툰 사람들은 강한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지역 사람이 경기툰으로 이주해 오려면 마을 회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행정당국에 등록된 60호 중 한족 3~4호를 제외하면 모두 조선족이다. 그런데 그 중 조선족이 살고 있는 집은 16호 정도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빈집이다. 남아있는 마을 사람도 노인과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며 청년과 아이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 떠난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돈을 벌러 갔다고 한다.

지린성을 포함한 중국의 동북 3성에는 한때 조선족이 200여만 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50여만 명으로 줄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들어 한국내 조선족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조선족 수는 2009년 38만명에 달하였으나 2011년에는 28만여 명으로 줄었다. 조선족을 외국인으로 취급해 방문취업비자 발급을 제한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이 통계에는 결혼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과 불법 체류자가 빠져 있기에 실제 한국 거주 조선족은 이보다 많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사는 조선족이 외국인인지, 그리고 그들의 국내 입국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 되묻게 된다. 조선족은 만주로 떠난 이주민 1세대들의 아들 딸들이 아닌가. 현재 경기툰에 사는 이주민 1세대는 이제 거의 사망하고 경기툰의 조선족 공동체 역시 거의 해체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신 새로운 공동체가 한국에서 형성되고 있다. 경기툰을 떠난 이주민 2세대들은 가족의 결혼식을 한국에서 올리고 이주민 1세대인 부모의 칠순잔치도 한국에서 치른다. 많은 경기툰 사람들이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주를 떠난 이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공동체를 이루며 삶의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이 정녕 외국인인가?

그런 점에서 조선족을 다문화정책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보다는 재외동포정책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 미국과 일본 동포의 2, 3세들이 한국에 입국하는데 제한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조선족에게도 같은 정책이 적용되어야 한다. 물론 여러 현실적 문제가 있겠지만 그 정도는 한국 사회가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도와 수원, 평택, 가평 등 여러 시·군도 경기툰과 가평툰 등 경기마을 출신 조선족을 고향으로 돌아온 손님으로 여기고 이들을 한자리에 초청해서 잔치를 하자. 그리고 조선족을 외국인이 아닌 재외동포로 맞이하여 이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