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가 있는 기자들의 말을 빌리면 '연평도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한다. 민가를 향해 무력 도발을 감행한 북한은 더욱 호전적이다. 바로 지척의 북진지는 요즘 요새화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연평도와 마주보고 있는 황해도 개머리 해안의 진지 추가구축공사가 한창이라는 것은 군당국도 확인했다. 우리 군도 바삐 움직이긴 마찬가지다. 겉은 평화로운 섬인데, 긴장감은 1년 전보다 훨씬 고조된 느낌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전하는 소식이다.
'언제 또 쏴 댈까'. 연평도 사람들은 요즘도 이런 공포감을 가슴에 달고 산다. 얼마 전 인천의 한 병원이 한 달 넘게 현지에서 무료진료를 하면서 확인한 결과를 보면 검진대상자 절반에 가까운 44%가 1년 전 포격때의 충격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한다. 또 '트라우마'에 따른 위장질환, 간·담도질환 의심자가 많고, 상당수는 굴착기 소리에 놀랄 정도로 여전히 불안감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젊은 장병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섬 주민들은 가산이 불타 98%가 섬을 떠나서 찜질방·친척집·빌라 등에서 보냈던 것이 수개월. 이제 겨우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지만, 어찌 그 불안감을 하루아침에 떨쳐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1년 전과 1년 후 우린 뭐가 달라졌는가. 우리 사회는 이미 연평도 피격사건을 기억속의 옛 일처럼 여기고 있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두려움은 남의 일이 됐다. 몇몇 단체만이 관심을 갖고 그들을 보듬고 있을 뿐이다. 연평도에선 관광객이란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한창 낚시철이지만 '꾼들'은 얼씬도 안 한다고 한다. 왜 그들만이 이런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가. 뭍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을 넘어서 죄책감마저 든다. 우리가 너무나 무심했고,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부 또한 맘 변하긴 마찬가지다. 연평도 피격사건이 터졌을 땐 수조원을 들여서라도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처럼 만들고, 서해 5도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떠들어 댔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정부분 개선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화가 치민다. 정부가 서해 5도서 종합발전계획 예산을 60%나 삭감했다. 당장 시급한 노후주택 개량도 17%만 반영됐다고 한다. 정주의식을 높이겠다는 약속은 결국 용두사미가 됐다. 피해 장병에 대한 보상책도 말뿐이다. 정부가 이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멍이 들게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연평도가 때아닌 북새통이라고 한다. 정부관계자는 물론이고, 행정기관·언론기관까지 수백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1주년을 맞아 생색내기식 행사를 위한 뭍사람들의 계획된 집단 나들이다. 며칠 후면 이들은 연평도를 모두 떠날 것이다. 그리곤 지금까지 그랬듯이 연평도는 관광객이 뚝 끊기고, 적막감마저 감도는 삭막한 섬마을로 돌변할 게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연평도 사람들의 트라우마 고통은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안보는 산소와 같다고 했다.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안보는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연평도가 바로 나라 안보의 바로미터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표본이기도 하다. 입으로만 애국과 안보를 외치곤,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 식은 곤란하다. 특별한 보상없이 누가 이 섬땅을 지키겠는가. 불과 1년 사이에 연평도를 보면서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우리의 속마음이 읽혔다. 오죽 했으면 연평도 주민들이 이 바쁜 와중에 인천까지 나와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운함을 표출했겠는가. 딱한 현실이다. 정말 이러다가 북한이 또다시 한방 때리면 어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