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왜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입니다. 마치 에머슨이 말하는 진정한 성공, 즉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에머슨이 말하는 성공은 곧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나눔은 상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수단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수단은 곧 직업입니다. 꿈을 잃은 사람은 수단을 꿈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이때 불행이 시작됩니다. 고3 학생의 어머니가 서울대학교 입학을 꿈으로 삼아 아들을 학대한 것이 그 예가 됩니다. 자신들의 존재가 국민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의원임을 잊은 채 그곳에 최루탄을 던지는 행위 역시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은 그런 행위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왜 아들에게 살해되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마침 로비를 지날 때 바닥을 닦는 청소부를 봅니다. 그는 즐거운 일이라도 하듯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합니다. "당신은 여태껏 내가 본 청소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청소부랍니다!" 그러자 청소부는 이렇게 답합니다. "각하, 전 일개 청소부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어요." 참 멋진 꿈을 가진 청소부입니다. 꿈은 사랑이고 수단은 청소하는 일이었던 것이지요.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입니다. 어린 소년이 백화점에 들어가더니 매장을 기웃거립니다. 한참 후, 쑥스러운 듯 망설이다가 여자 속옷 매장으로 들어갑니다.
"저, 내일이 엄마 생신이라 내의를 선물하려고 하는데요."
"엄마 치수가 어떻게 되시니?"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엄마는 키가 크시니, 작으시니? 뚱뚱하시니, 날씬한 편이시니?"
"우리 엄마는 완벽해요. 우리 엄마는 굉장한 미인이거든요."
점원은 가장 날씬한 치수를 예쁘게 포장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소년이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속옷을 바꾸어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소년이 바꿔 간 치수는 속옷으로는 가장 큰 치수였습니다.
꿈은 현실의 고통마저도 이겨낼 의지를 선물합니다. 사마천에게는 삶과 죽음, 명성과 지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날조된 죄명으로 모함을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당히 죽음을 택함으로써 억울함을 밝히고 존엄을 지킬 수도 있었지만, 남자로서 가장 참기 어려운 치욕인 생식기를 자르는 벌을 받아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에게는 반드시 끝내야 할 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기'를 집필하는 일이었습니다.
사관이었던 아버지 사마담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주공이 세상을 떠나고 오백 년이 흐르자 공자가 나타났고, 공자 이후로 오백 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공자의 '춘추' 뒤를 이어 찬란했던 시대를 소개하고 기록해 역사로 전해줄 사람이 없구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쓰겠습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사마천은 결심합니다. '내 비록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지라도 하늘과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임을 완수하고야 말리라.'
만약 그 어머니가 전교 1등을 강요하지 말고, 아들이 평생 살면서 해야 될 사랑의 위대함을 가르쳤다면, 만약 의원들이 FTA 비준을 처리함에 있어 상대 진영의 저항을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겠다는 입장에서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오늘 아침 문득 안도현 선생의 시가 떠오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