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에서 본다면 지방 자치의 핵심적 역할 중의 하나는 갈등의 관리조정능력이라 할 수 있다. 당분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정부 및 의회, 시민 사회와 언론은 지역의 갈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역량의 상당부분을 갈등관리에 쏟을 수밖에 없다. 과거의 정권은 사회적 갈등과 인식의 차이를 주로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모든 변화와 개혁은 시민적 동의를 필요로 하며 동시에 갈등의 해결도 갈등집단의 동의 또는 승복을 받아내어 사회적 협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conflict)은 심리학적으로는 양립하기 힘든 정신과 행동에 나타나는 반응이다. 갈등의 주체가 조직이나 계층으로 확장되면 사회적 갈등이 된다. 일반적으로 갈등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갈등을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그 원인과 치료를 강구하는 이론과, 갈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해결을 사회적 발전의 계기로 사고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갈등을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갈등 해소에 급급하여 권위주의적 방식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갈등을 사회발전의 필연적 산물로 보는 관점은 해결방식에서도 협의와 공론을 통한 갈등의 조정을 강조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무갈등 상태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회의 발전과 함께 갈등은 더욱 복잡하고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음을 감안할 때,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것의 극복이 사회적 발전의 계기가 된다는 적극적 관점에 설 필요가 있다.
서부극에 등장하는 역마차는 말이 끄는 수레 중 가장 빠른 것이다. 그런데 증기 기관차의 등장으로 사라진 역마차가 말과 마차의 갈등이 낳은 산물이란 점은 흥미롭다. 마차의 수레바퀴는 표면이 매끄럽고 단단하여 마찰력이 적은 곳에서 잘 구른다. 그런데 마차를 끄는 말의 입장에서 보면 풀밭 같은 곳에서 달리는 것이 편하다. 미끌어지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흙길에서는 바퀴가 잘 구르지 않는다. 이처럼 마차의 수레바퀴와 말의 다리는 화해할 수 없는 갈등관계에 있다. 말이 달리기에 편한 길은 마차바퀴가 잘 구르지 않고, 반대로 마차바퀴가 잘 구르는 곳은 말이 달리기 어렵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마찰력이 적으면서 어느 정도의 탄력이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표면이 매끄러운 고무판 같은 길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길들을 적당한 탄성을 지닌 고무판으로 포장한다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설사 그러한 길을 만든다 할지라도 바퀴와 말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말은 말대로 바퀴는 바퀴대로 불만을 호소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양자의 갈등을 이상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으로 바퀴가 구르는 길과 말이 달리는 길을 분리하는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마차바퀴는 레일 위를 구르게 하고 레일 사이의 흙길로는 말이 달리게 하는 것이다. '역마차'의 교훈은 하나의 비유이지만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갈등도 양자가 모두 만족하는 (win-win)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