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이 '나는가수다'에서 자줏빛 조명아래 주술을 흘려보낼 때 작은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 한다."
고등학생이던 형이 암송하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아브라카다브라'는 '말 한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뜻을 가진 주문으로, 아브락사스라는 이집트의 마법적 사상을 모태로 하고 있다. 아브락사스를 숭상하는 학파를 그노시즘이라고 하는데 신에 대한 절대적 귀의가 아닌, 인간이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양을 보노라면 갑갑하다. 온 세상이 경제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이런 형세는 더욱 악화될 듯하다. 희망을 잃어버린 99%가 1%를 탓하며 지구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고 있는 형세이다. 판을 바꾸자고 한다. 선거를 할 때마다 정권이 바뀌고 있다. 우파 정권에서도 좌파적 공약이 나오고 있다. 버핏세는 이제 정파를 떠나 표를 얻기 위한 필수 품목(must-have)이 되어가고 있다.
선거를 경제적 맥락으로 표현하면 정치인은 돈을 주겠다고 하고, 유권자는 표로 응답하는 선물거래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47공약으로 대표되는 대통령선거와, 뉴타운공약이 판세를 결정했던 총선은 표를 사는 정치인들에게는 대박, 국민들에게는 배신과 빈손뿐인 불평등 거래로 판명되고 있다. 세계경제는 불황이라는 터널의 입구에 막 들어섰을 뿐이다. 세계 경제에 모질게 엮여있는 한국경제도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 판국에 돈과 표를 거래하는 정치시장은 어찌될 것인가? 정치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달라고 할까. 더 이상 돈이 없다는 것은 이제 알만큼 안다.
12월 9일 인천시청에서 타운미팅이 열린다고 한다. 인천시민 300인이 모여 시민의 눈으로 보는 행복한 인천 만들기라는 주제로 머리를 맞대고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당신이 인천광역시장이라면 인천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쁘다. 기대된다. 그리고 부탁이 있다. 표를 얻고자 하고, 시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정치인이나 기관들은 더 이상 돈을 더 벌게 해주겠다는,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까지 한국의 상황에서 '성장이 힘들다'고 하는 건 정치인으로서 표를 날려 보내는 자살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문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정치인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세상 형편이다. 진실이 비참할 땐 거짓이 미덕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 모두는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치킨게임이다.
버려야 얻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돈을 달라고, 경제를 성장해야 한다고, 대기업을 유치하자고, 20평 아파트를 30평으로 늘려달라는 '성사되지 않을 거래'를 '줄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요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20평 아파트에서 30평 못지않은 가족화목과 삶의질을 살려내는 살림의 지혜를 시장과 의원들과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궁리해 달라고, 같이 고민하자고 손을 내밀 수는 없을까.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 정치인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늙는다는 것은 세상의 규칙을 바꾸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카뮈의 멘토인 장 그르니에가 한 말이다. 형도 나도 흰머리가 자연스럽게 어울림직할만큼 세월은 흘렀다. 하지만 노후를, 사교육비를, 등수 가리기 공부에 찌든 자식들을, 청년 실업자를, 비정규직 직장 동료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깨뜨려야 할 알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세상엔 때가 있다고 한다. 시절인연을 바라며 인천타운미팅에 주문을 건다.
아브라카다브라 행복인천 상향(尙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