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주 달변이었고, 의전에 거리낌이 없었다. 무엇이든 자기 식으로 했다. 수행원들과 소파에 앉아 '금강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수행기자가 상대국 정상과 회담장에서 악수를 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제 이 사진도 역사의 뒤 안으로 묻어둬야 한다. 낡은 빛깔만큼이나 흘러간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니, 지나온 시간의 작은 파편일 뿐이다. 시간의 엄혹함을 다시금 느낀다.
우리 사회가 차분하고, 의연하게 그의 장례를 지켜보는 것도 이런 기록의 힘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2000년 그가 평양 순안공항에 극적인 효과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숱하게 보아왔다. 외신을 통해 그의 지치고 병든 모습을 지켜봤다. 국내 언론의 보도로 열차를 타고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그의 동선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의 돌연사는 뇌경색으로 쓰러질 때 이미 예고되어온 터다. 불안과 두려움의 정도가 과거와는 처음부터 달랐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도 무던하게 견뎌온 우리다. 북한체제의 불가측성에 대한 내성을 스스로 쌓아온 것이다.
이렇듯 2000년 이후 남북관계의 주역들을 역사의 저편으로 모두 떠나보냈다. 정상회담을 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김 위원장까지 떠났다. 정상회담의 공과는 물론 있을 것이다. 미화한다고 치부가 감춰지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평화상은 인류에게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또 자신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았다 해도, 인민을 굶주리게 한 반인륜의 독재 기록을 결코 덮을 수는 없다. 누가 역사를 비켜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할 일은 이 토대 위에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가느냐이다. 지난 4년 동안의 대북정책도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가 되었다. 원칙 고수가 답보나 정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위(無爲)도 하는 것'이라는 담론은 철학적 사유이다. 정치와 외교는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여야 한다. 더구나 북한체제는 예측 자체가 어렵다. 2000년 순안공항으로 걸어나오던 김 위원장을 처음 발견한 것도 전용기 안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어, 저기…' 어느 누구도 김 위원장이 순안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몇몇 전문가들이 가능성만을 점쳤을 뿐이다. 현재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일 사후(死後)'를 얘기하고 있지만, 나는 단언한다. 모두 빗나가리라는 것을….
2011년도 벌써 세밑이다. 어느 해라도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을까마는, 남북관계에서 올해는 커다란 매듭이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해마다 매듭을 짓기 때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어디 사람의 삶만 그러하겠는가. 회사의 미래도, 국가 장래도 예외일 수 없다. 하나씩 매듭을 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묵은 것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현실적 대안이 한반도에 움트도록 해야 한다.
신묘년 한 해를 떠나보내며 여러 생각에 잠긴다. 김 위원장의 장례를 지켜보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나 더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만약 그의 답방이 이뤄졌더라면, 오늘의 한반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임진년 새해는 정말, 희망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