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연말 대학 동기회 모임에 나갔더니 졸업 후 가장 많은 친구들이 모인 자리가 되었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50이라는 나이 숫자 앞에서 당황하는 세대이다. 동양에서는 나이 사십이 불혹(不惑)의 시기이고, 오십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에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서양의 심리학에서는 거울을 바라보듯 자신을 반추해보고 방향을 재설정한다는 의미에서 경상자아(鏡像自我)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의 판단에 따라 노후 생활에서 여유를 가지고 자유로움을 갖든지 아니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생활양식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386세대라고 하여 우리 사회 발전의 동력을 제공했던 이 세대가 이제는 586세대가 된 것이고, 이들에 대한 새로운 역할 기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87년 민주화의 선봉에 서 있었고, 진보적인 우리 사회의 방향타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386 세대는 발전의 추진력으로 설명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97년 외환 위기와 2007년 금융위기에서는 직격탄을 맞고 가장 큰 희생이 된 계층이기도 하다. 국가발전의 수혜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중년에 들어서면서 희생의 세대이기도 한 것이었다.

한국 산업화의 끝자락을 지나 정보사회로 진입하는 시대에 민주화의 주역을 담당했던 이들은 지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전이지대에서 갈등의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정보를 얻고 판단하는 기성세대와 포털과 SNS를 통해 소통되는 신세대 사이를 오가면서 균형을 잡아 줄 수 있는 세대이다. 장편 대하소설에도 익숙하지만, 3줄 미만의 트위터 문체에도 익숙한 세대이다. 양쪽을 이해하여 주다보면 양쪽으로부터 소외를 받기도 하지만, 이들의 균형 감각이 우리의 체제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 기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의 총선과 대선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에 우리 사회는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의 흐름이 맞부딪치면서 거친 울돌목이 형성될 전망이다. 이 카타스트로피의 무질서에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세대가 필요하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버스가 속도를 내려고 할 때 중간의 완충지대가 넓어야 안전이 보장되고, 진보와 보수의 양 쪽이 활동 범위를 넓히고자 하더라도 중간의 점이 지대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2012년은 우리의 역사에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중요한 시기로 예측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시계(視界) 제로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금융파동의 징조를 보면 곳곳에 지뢰가 숨겨져 있다. 청년 실업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데,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속도에 페달을 밟고 있다. 내년의 선거는 한국 발전의 흐름을 이어서 발전 계승할 것인지, 남미의 역사에서 보듯 개발도상국 시대로 회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던 때,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60달러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1977년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였고, 1995년에는 선진국 모임인 OECD에 가입을 하였다. 개발과정에서 총 127억 달러의 선진국의 지원을 받았으나, 2000년에는 공식적으로 선진국 수원국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로써 2010년 1월1일에 한국은 OECD 개발협력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에 가입하여 국제사회의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공여국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세계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지위를 인정받게 된 계기이다. 그리고 많은 개발도상국이 한국 경제발전의 원인을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의 발전 결과를 보고 무조건 한국 따라가기를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을 이어서 흑룡이 승천하는 국운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요구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방향을 설정해야 할 리더가 필요하고,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리더의 덕목은 조정력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원주의가 되어 다양한 의견이 제어력 없이 표출되고 있다. 사실 과잉참여의 시대이다. 오십의 나이를 불혹의 시기를 지나 지천명을 한다고 설명한 것은 특정 의견이나 이견에 흔들리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들어주면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586세대가 우리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신년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