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흔히 겨울을 네 계절의 끝이라고 말한다. 이는 계절의 순환을 인생이나 생명현상에 빗대어 생각하는 문화적 관습일 뿐 실제로는 가을과 봄 사이의 계절로 24절기로 보면 입동부터 입춘 전까지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기후로 볼 때는 12월에서 2월까지가 겨울이다. 어원을 따져보면 겨울의 어원인 '겻'이나 가을의 '갓', 여름의 '널', 봄의 '볻'은 모두 해(태양)와 관련되는 고유어로 짐작된다. 우리 조상들은 계절의 변화가 태양의 움직임과 기온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겨울은 가을에 거둔 곡식을 저장하는 '秋收冬藏' 계절이다. 이때 저장한 곡식은 겨우내 먹을 식량이면서 봄이 되면 파종할 종자이기도 하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는 시간인 셈이다.

문명의 발달로 계절의 변화는 농경사회에서와 같이 우리의 일상을 좌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달력의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1, 2월은 새해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겨울은 추위와 눈과 얼음의 계절이다. 추위와 얼음은 자연의 생명활동을 중단시키거나 위축시키지만. 인간에게 혹독한 추위는 생명의 의지를 더욱 강렬하게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조선조 선비들의 시조나 문인화에 나타난 겨울 이미지는 생명의 '봄'을 부각시키는 대조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후기의 가객 안민영은 '매화사'에서 "바람이 눈을 맞아 산창에 부딪히니/ 찬 기운 새어 들어 잠든 매화 침노한다/ 아무리 얼우려 한들 봄뜻이야 앗을소냐"고 노래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 눈 속에 서 있는 소나무나 대나무, 매화를 유배자나 은둔지사의 지조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설경도(雪景圖)에는 하얀 눈과 먹빛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생명을 얼어붙게 하는 냉기와 이를 견디는 나무와 꽃의 비장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설죽도나 설송도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은 완당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이다. '세한도'에 나타난 세 그루 송백의 늠름한 자태, 고통스러운 세월의 무게와 비바람을 견디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있는 한 그루의 노송, 그 가운데에 자리잡은 한 채의 낡은 초가집은 고적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범접키 어려운 고상한 기품이 흐르고 있다. 이 풍경은 "곤궁해야 선비의 절개가 드러나며, 세상이 어지러워야 충신을 안다(士窮見節義 世亂識忠臣)"거나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센 풀을 알 수 있고, 매서운 서릿발이 내려야 상록수를 구별할 수 있다(疾風知勁草 嚴霜識貞木)"는 유가적 처세철학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시로도 이어지는데, 저항시인으로 불리는 이육사의 중요한 시편들은 대부분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육사는 '교목', '절정', '광야', '꽃'과 같은 작품에서 혹독한 추위에 맞서는 나무나 꽃과 같은 식물적 이미지를 시의 중심적 이미지로 설정하여 현실 극복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육사는 '꽃'에서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라는 구절을 통해 동토의 대지에 봄을 기다리며 꿈틀거리는 생명의 씨앗을 노래했다. 그의 시에 나타난 겨울 이미지는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가리키는 은유에 해당한다. 정지용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장수산'도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는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련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겨울 한밤내-"라고 노래했다. 이러한 심경은 겨울 밤의 시름과 적막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올연히 견디겠다는 인고(忍苦)의 자세로 보인다.

겨울에 대한 역설적 상상력은 시가문학이나 문인화와 같은 전통적 예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인의 독특한 미적 사유방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리고 현실의 모순인 '사회의 겨울'이 존재하는 한, '겨울'은 예술 작품 속에서 현실과 대결하는 시적 주체의 의지를 표상하는 이미지로 거듭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