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희 / 가천대 석좌교수
우리 속담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미천한 신분의 극복을 빗대어 한 말이자 사회학 용어인 계층이동을 쉽게 표현한 말이다. 사회계층의 수직적 이동을 의미하는 사회이동 (social mobility)을 계층이동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의 양반계급을 탈피하면서 상대적으로 점차 계층이동이 용이한 사회로 인식되어 왔다. 한때 '검사와 여선생'과 같이 신분계급을 뛰어 넘는 내용을 다룬 신파극 등이 유행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통계청이 2년마다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는 지난해 12월의 '사회통계'는 그간의 우리 국민의 계층이동에 대한 의식이 크게 변화한 것으로 나타나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일생동안 노력한다면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비율은 28.8%에 불과했으며 이는 2년 전 35.7%보다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 반면 '상승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은 2년 전 48.1%에서 58.8%로 훨씬 높아진 것이다.

'나는 중산층이다'라고 생각하는 가구 수는 52.8%로 1988년 통계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53.4%에 비해서도 낮다. 반면 '나는 하층이다'란 응답 비율은 2009년 42.4%에서 45.3%로 늘었다. 중산층과 하층의 비중 차이는 7.5%에 불과하다. 수치상 소득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중산층이 느끼는 체감도는 낮아졌고 계층이동에 대한 긍정적 생각도 줄어든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국정운영의 목표를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로 잡은 것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국민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 책 판매를 통해 100만부 이상 팔린 '계층이동의 사다리(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verty)'에서 저자인 '루비 페인(Ruby Payne)' 박사는 빈곤층이 안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면서 계층 상승을 위한 해법으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자녀교육에 열심인 부모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을까? 그러나 통계청 조사에서 자녀의 계층상향 가능성에 대해 41.7%만이 긍정적 답변을 했고 그 중 매우 크다고 답변한 것은 4%에 불과했다. 부정적 반응은 42.9%에 달했다. 부정적 답변이 긍정적 답변을 넘어선 것 역시 관련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나는 몰라도 내 아이는 잘 살 것이다'라는 기대마저 접어버린 조사결과는 주거비· 교육비 급증 등 심해져가는 사회 양극화 속에 정상적 방법을 통한 서민들의 계층 상승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 출신이고 5명중 1명은 특수 목적고 출신이었다. 서울 강남3구 출신학생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구실을 했던 교육이 오히려 계층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험생 집안의 가계살림에 따라 수능성적이 나온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의 혹독한 경험을 기억한다. 4만여 개 기업의 도산으로 많은 실업자가 생겨나게 되었고, 별다른 직업 훈련시스템의 도움이 없어 졸지에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 현상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산층이 무너져 사회 격차가 확대되면 사회가 흔들리게 된다. 사회 양극화는 우리만이 겪는 문제는 물론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도 청년 실업과 일부 금융회사들의 탐욕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 안에는 소득 불평등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사회양극화 현상을 줄이고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많은 국민이 미래에 대해 희망보다 절망을 더 느낀다면 과연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