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혁 /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얼마 전 외래 진료실에 70세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미시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셨다. 그런데 계속 눈물을 흘리시는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무관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꽤 오래 전부터 두통을 호소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2~3달 전부터 걸음걸이가 약간 이상해지더니 이따금씩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2~3일 전부터는 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말조차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 병원에서 MRI 촬영을 했더니 뇌종양이라고 큰 병원에 가보라해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오셨다.

이 할머니의 병은 최근 드라마 '브레인'에서 김상철 교수(정진영 분)가 진단받은 뇌수막종. 뇌종양은 다른 종양과 달리 발생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뇌종양 중 비교적 흔한 뇌수막종은 거의 대부분이 악성(암)이 아닌 양성종양이라 자라는 속도가 느려 증상이 악성종양이나 혈관질환과 달리 매우 느린 특징이 있다.

드라마 속 김상철 교수의 경우 종양이 전두엽에 생겨 성격 변화가 나타났지만, 뇌수막종은 뇌를 싸고있는 막(뇌수막)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뇌 어디든 생길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시신경 주변에 생겨 시신경을 압박하면 시력이 떨어지거나 시야가 좁아지고, 뇌 운동중추부위에 생기면 반신마비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교통사고후 검사, 건강검진 등에서 머리 CT, MRI 촬영을 하는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증상이 거의 없는 작은 크기의 뇌수막종이 초기에 발견되기도 한다.

뇌수막종 치료는 근본적으로는 수술하는 것이다. 뇌종양이긴 하지만 뇌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뇌를 싸고있는 뇌막에서 발생해 많은 경우 심각한 뇌손상 없이 성공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한때 그룹 코요태의 빽가라는 연예인이 이 병으로 수술후 완치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러나 뇌수막종의 위치나 주변 정상 뇌 조직과의 유착으로 인해 수술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크기가 커 뇌를 압박하는 증상이 심한 경우 당연히 수술로 제거하지만, 크기가 비교적 작고(보통 3㎝ 이하) 증상이 없거나 약한 경우 종양이 더 커지지 않게 할 목적으로 두개골을 열거나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종양 부위에만 방사선을 주는 방사선 수술(감마나이프, 노발리스, 싸이버 나이프 등)로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뇌수막종은 완전 제거할 경우 완치가 되는 병이나 매우 드물게 조직검사 결과 악성 뇌수막종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있고, 제거된 부위 주변의 뇌막에서 재발을 하는 경우도 있어 치료후에도 주기적으로 CT나 MRI 촬영을 통해 재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할머니 손을 잡고 계속 우시던 할아버지가 아직도 생각난다. 평생 고생만 시켰다며 꼭 당신에게 호강시켜줄 기회를 달라면서. 물론 할머니는 수술이 잘되어 정상적인 상태로 걸어서 퇴원하셨다. 할아버지에게 그 기회를 드렸는데 정말 할머니를 호강시켜 주시면서 살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