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민나 도로보데스'. '모두가 도둑'이란 뜻의 일본말이다.

1982년 3월부터 방영된 MBC의 인기드라마 '거부실록'에 등장했던 충남 공주 갑부 김갑순(1872~1960)이 읊조린 대사의 한 구절이다. 김갑순은 1930년대 말에 공주와 대전 일대에 총 3천341만3천550여㎡의 토지를 소유했던 전설적 인물로 대표적인 친일파 자산가였다. 당시 대전시 전체 면적의 40%가 그의 소유였다.

60년 만에 맞는 흑룡의 해 벽두부터 사방에서 구린내가 진동한다. '영일대군', '방통대군'으로 회자되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측근들의 잇단 비리가 불거지는 와중에 이번엔 박희태 국회의장이 '돈봉투'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심지어 야당인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유사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당사자 모두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수는 없는 법이다. 권력의 중심부가 이런 지경이니 어딘들 온전하겠는가.

지난해 말 검찰은 1년여 진행한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수사를 통해 불법대출 6조315억원, 부당대출 1조2천283억원, 분식회계 3조353억원, 위법배당 112억원 등 총 9조780억원의 금융비리를 밝혀냈다. 유사 이래 최대의 금융범죄로 2만여명의 서민예금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에만 2차례에 걸쳐 저축은행들이 무더기로 영업정지를 당한 만큼 저축은행 비리는 훨씬 더 클 예정이다.

그런데 또다시 유사사건들이 발생했다. 대표적 서민금융기관인 전국의 단위농협 54곳은 2009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대출금리를 조작, 168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어 임직원들의 성과급잔치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위농협 본점수만 1천167개에 달하는 터여서 춥고 배고픈 농민들의 지갑을 터는 파렴치한 범죄들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박정부 치적거리 중 하나인 미소금융에서도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검찰이 지난 1일 서울 청진동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이다. 수천억원대의 기금을 저신용자들에 대출해 주는 만큼 부정의 소지가 상존했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빙산의 일각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분식회계로 혹세무민한 경우도 처음 확인되었다. 인천, 화성, 시흥시를 비롯한 전국의 일부 지자체들이 세입예산 뻥튀기 혹은 사업비 지출 축소 등 '무늬만 흑자' 재정으로 눈속임을 하다 적발되었던 것이다. 투명경영 시비가 여전한 대학에서는 농어촌 특혜입학 부정의혹까지 불거져 또 한 번 곤욕을 치를 예정이다. 재벌 서열 3위의 SK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가 1천억원대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것쯤은 별로 주목되지도 않는다. 부패가 전방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비리공화국으로 변질되었음은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08년 MB정부 출범과 함께 부패지수 점수가 약간씩 떨어지더니 지난해에는 5.4로 183개국 중에서 43위를 기록, 2010년 39위에서 4계단이나 하락했다. OECD 평균인 7.0에도 한참 못 미친다. 세계 7위의 무역대국 및 11위 경제대국의 위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결과다.

외환보유고, 국제수지, 경제성장률 등 거시경제지표와 국가재정상태가 선진국들에 비해 비교적 양호한 데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글로벌 스타기업들이 버티고 있어 아직까진 국가신용등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안심할 바가 못 된다. 장기간 내수부진이 지속되는 데다 고물가까지 겹쳐 서민가계수지가 점차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리타이어푸어 등 신빈곤층의 점증은 또 다른 변수다. 세계경제의 불투명성 확대도 고민이다.

경제학에 '구성의 모순'이란 개념이 있다. 부동산투기처럼 개인적인 선(善)이 사회전체적으론 오히려 해악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양극화 심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대, 성장기반 약화, 국가신용도 하락 등 부작용을 확대 재생산한다. 부패불감증 사회를 걱정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