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세상을 뜬 소설가 박완서의 마지막 소설집이 출간됐다.

'기나긴 하루'(문학동네, 292쪽, 1만원)에는 말년에도 창작을 쉬지 않은 '영원한 현역작가'인 그가 2008~2010년 문예지에 발표한 세 편의 단편소설과 문학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신경숙·김애란이 추천한 기존의 단편 세 편이 묶였다.

첫 수록작인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고인의 팔십년 생애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자전소설이다. 고인이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다.

엄마가 들려준 아버지와의 기억,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에서 나던 대처의 냄새, 서울에 처음 와서 그 집이 그 집 같은 꼬불꼬불한 골목길에서 느낀 막막함과 공포 등 단편적인 장면들을 감각적으로 나열하면서 생애를 반추한다.

남편과 아들을 나란히 먼저 떠나보낸 아픈 기억도 담담하게 회고한다.

2009년작 '빨갱이 바이러스'는 시골길을 운전하던 노년의 여성화자가 이미 끊겨버린 버스를 기다리던 세 여인을 자기 집에 하룻밤 묵게 하면서 시작한다. 세 여인은 익명성을 빌려 그동안 남들에게 쉽게 얘기하지 못한 내밀하고 '망측한' 사연들을 들려준다.

여인들 앞에서는 끝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던 화자는 그들의 상처와는 함께 견줄 수 없는, 전쟁과 분단이 남긴 상처를 기억 속에서 꺼낸다.

이와 함께 2008년 발표한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갱년기 주부인 주인공이 지적이고 경제력까지 갖춘 시어머니와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 그리고 아들과 이혼한 신세대 며느리와의 어색한 만남을 그린 소설이다.

이밖에 기존 대표작으로 김윤식은 1975년작 '카메라와 워커'를, 신경숙과 김애란은 각각 1993년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과 1974년작 '닮은 방들'을 골랐다.

/이윤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