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엷어진 마음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차가 많이 막힐 테니, 하룻밤 자고 내일 새벽에 떠나지." 뻔히 갈 줄 알면서도 아버지는 잊지 않고 이 말씀을 또 하셨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허겁지겁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에 대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지가…. 서둘러 출발해봐야, 고속도로 위에서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안다. 도시 집에 가봐야 뾰족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어김없이 도로 위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정녕 고향 길은 이제 효도의 자기위안이며 어린시절을 잠시 되살려보는 인사치레에 머무는 것일까.
이렇듯 우리는 고향을 잃어가고 있다. 장례문화도 바뀌고 있는 터여서,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명절 귀성길 정체가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급속한 도시화가 불러올 변화된 풍속도이다. 느림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도시생활과, '나아가지 않으면 그건 퇴보'라고 믿는 경쟁심리의 발로이다. 또 시댁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음이리라. 자식들 키우느라, 겨우 논밭 몇 마지기로 남은 장수사회는 며느리의 입김을 크게 만들어 놓았다. 갈수록 딸 하나 뿐인 장모의 눈치도 살펴야할 세태이다.
여기에 고향은 해마다 아쉬움이다. 옛 추억의 자리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산뜻한 개발계획과 편리한 시설들이 대신 메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가 여럿 사라지고 회관 건물이 새롭게 단장을 했다. 지지난해 새로 난 도로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놀았던 정자가 세워져 있던 터다. 지천(支川)을 사이에 두고 우리 마을과 마주 보던 강 건너 마을에는 대형 콘도공사가 한창이다. '불꽃이 누가 더 오래 가나'를 놓고 '달집 오래 태우기'로 다투던 강 양쪽 모래사장은 하천 정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연을 날리고, 팽이를 치던 마을 뒤 등천(登天) 공터는 또 어떤가. 아담한 새 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정성스레 심었던 포플러가 우리보다 빨리 자라고 있던 읍내 초등학교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버렸다. 지금은 아파트촌이다.
도회지에 살다가 명절 때나 잠깐 들르는 출향 인사들 추억의 높이에 고향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물론 없으리라. 지리산 둘레길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민박집까지 생겨나고 있는 터이다. 쥐불놀이를 하다 설빔인 나일론 새 옷을 홀랑 태워먹던 그 시절을 마냥 붙들어 맬 순 없는 일이다. 시골집에도 가스가 들어오고, 수세식 화장실로 교체한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가 길손처럼 들르듯, 고향도 옛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워가고 있다.
고향길은 언제나 세월의 변화이다. 부모님의 깊어진 주름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쓸쓸함도 함께 배어나온다. 재촉하듯 떠나오지만, 희미하게 전해져 오는 마을 곳곳의 이력 뒤에는 고향의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가 느끼는 고향이 우리 세대의 그것과 달라도 고향은 고향이듯이, 우리의 다음 세대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들만의 마음의 강도로, 그들의 눈높이로 변함없이 고향을 바라볼 것이다.
'세월은 솔나무 스치는 바람/삶은 댓돌에 쌓인 눈송이/친구의 하얀 머리칼/ 착한 웃음/ 또 한 해가 갔구나'. 설날 새 아침의 느낌을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언제부터인가 귀경길은 이 시구에 공감을 더하고 있다. 옛 자취는 사라졌어도 숨결은 면면히 이어진다. 먼 길을 마다않고, 고향에 들렀다 와야 '아, 한 살 더 먹었구나'를 절감하게 된다. 정말이지, 이것만으로도 다시 고향에 가야하는 아늑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