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설날 아침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용 전시회를 보러 갔다. 용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장자는 기(氣)를 우주와 생명을 주재하는 천지의 근원이자 도덕성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장자'의 '천운'편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용은 천지의 정기가 모이면 용의 모습을 취하고, 천지의 정기가 흩어지면 아름다운 색채가 되어, 불가사의한 변화를 하며, 더욱이 구름을 타고 청담주야(晴曇晝夜)의 변화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용을 '천지의 정기'가 모인 조화와 융합의 원리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용을 물의 신으로 보아 농민들은 풍작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고 어부들은 풍어를 위해 용왕제를 지낸다. 용을 물의 상징으로 보아 기우제와 용왕제를 지낸다는 것은 농민의 꿈이요 어부의 꿈인 용꿈을 원한다는 것이다.
전시관에서 유독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붉은 곤룡포를 입은 왕의 형상이다. 사슴, 낙타, 토끼, 뱀, 매, 호랑이 등 여러 동물들의 좋은 점만을 뽑아 만든 만큼 '장자'에서 말한 조화와 융합, 그리고 권위를 상징하는 용은 예로부터 절대적인 권력을 지향하는 왕의 정체성을 표방하기에 적절한 동물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서 조화와 융합은 잊은 채 권위만을 행사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는 절대자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용안에 흐르는 용루에서 진실과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를 역사는 수없이 증언해 보인 것이다. 권력과 진실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아직도 순전히 국민들의 몫인 것 같다.
문제는 용은 보통 시시하게 개천 같은 데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이다. 과거의 계급사회가 이를 쉽게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이 되기까지는 무명의 물고기나 이무기의 운명으로 살아야 한다. 등용문(登龍門)의 신화가 여기서 나오게 된다. 중국 황하 상류에는 용문폭포가 있는데 그 밑에는 폭포 위로 뛰어오르려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용문에 오르기만 하면 용으로 변할 수 있으니 이를 두고 입신출세의 관문인 등용문이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용문에 이르지 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용문에 이른다고 모두가 다 승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여의주가 필요하다. 여의주는 인간에게는 잔재주와는 다른 고귀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입신출세의 관문을 통과했으나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갖지 못해 다시 이무기로 전락해버리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의 해이다. 자칭 현대적 등용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많은 후보들이 사방에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여의주 없이 권력만을 탐할 때 그 말로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흑룡에게는 조화와 융합의 상징인 여의주가 필수적이다.
2012년, 출사표를 던진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웅비시키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