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업계에 '제2의 카드대란'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카드사들의 잇따른 분사를 계기로 업체 간 출혈 경쟁과 무분별한 대출 행태가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카드대란'이 일어난 지 10년 만이다.

   2002년 시작된 카드대란은 '김대중 정부'가 침체한 경제를 살리고자 규제를 대폭 풀면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한 데서 촉발됐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대학생ㆍ실업자는 물론 '길거리 회원 모집'을 통해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카드발급을 남발했고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도 없앴다. 특히 월 70만원에 불과했던 현금대출 이용한도를 없앤 것이 카드 '빚 폭탄'의 원인이 됐다.

   민간소비 가운데 카드결제 비중도 1990년 5.6%, 2000년 24.9%, 2002년 45.7%로 파죽지세로 높아졌다. 경제활동인구 1명당 카드 수는 1999년 1.8장에서 2002년에는 4.6장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전체 카드발급 수도 3천899만3천장에서 1억480만7천장으로 폭증했다.

   급기야 카드 사용액이 2002년 623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1년 카드 사용액이 558조1천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가히 엄청난 규모다.

   무분별한 카드사용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카드빚은 카드사의 부실로 이어졌다.

카드빚을 못 갚은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달하고, 13% 수준이었던 카드사의 자기자본비율은 -5.4%로 급락했다. 정부가 2003년부터 길거리 모집 중단 등 규제를 가했지만 결국 카드사들은 부도 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에 나서는 처지로 전락했다.

   국민카드는 모기업인 당시 국민은행 사업부로 흡수됐다. 2004년 외환카드와 우리카드도 각각 모은행에 흡수됐다. 이어 삼성그룹은 삼성카드에 5조원을 투입했고, LG그룹은 LG카드를 채권단에 넘겨 2007년 결국 신한카드에 합병됐다.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는 카드업계의 중심에는 카드대란 당시 카드사를 흡수하거나 인수ㆍ합병한 금융지주사들이 도사리고 있다. 사업 확장을 위해 카드 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해당 카드사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카드론 등을 통한 가계대출을 늘리려고 무한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카드사들이 무차별적인 '돌려막기식' 현금서비스 장사에 나섰던 10년 전 카드대란의 징후와 유사하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2011년 말 카드사의 총 자산은 79조3천억원으로 카드사태 이듬해인 2003년 말(78조9천억원)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카드사들이 카드대란 이후 구조조정을 겪다가 당국의 규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다시 몸집을 불린 결과다. 카드사의 총자산은 2008년 65조원, 2009년 65조9천억원, 2010년 75조6천억원으로 늘었다.

   국가경제 규모가 커지는데 비례해 카드시장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

   그러나 4대 금융지주를 비롯한 각 금융사가 출혈경쟁을 선도한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KB국민금융지주는 KB국민카드, 하나금융지주는 하나SK카드를 분사시켰고 우리금융지주도 우리카드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 카드산업이 대형 금융사들의 새로운 경쟁 무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은행대출보다 규제가 덜한 카드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28조2천억원으로 2010년 말보다 3천억원 증가했다. 대출 문턱이 높은 은행 대신 상대적으로 수월한 카드사를선택한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카드대출 가운데 보이스피싱 문제가 심각한 카드론은 지난해 말 15조8천억원으로 2010년 말(15조5천억원)보다 늘었다. 카드론은 2008년 말 12조원 수준이었다.

   카드론은 은행에서 더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저신용자가 찾는다. 카드론 대출이 금융권에 잠재한 시한폭탄으로 불리고 이유다. 지난해 말 12조4천억원에 이른 현금 서비스도 심각하다. 대출 연체율이 위험 구간으로 진입한 탓이다.

   지난해 1∼10월 연체율은 평균 1.8%로 같은 기간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의 두 배를 넘었다.

   연평균 카드대출 연체율이 카드대란 뒤 2006년 0.1%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매우 안 좋다. 시중에서는 벌써 '가계대출 폭탄'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지난해 말 신용카드 이용 실적은 558조1천억원으로 전년보다 40조7천억원가량 급증했다. 이제는 신용카드가 신용 구입ㆍ대출에서 일상 수단이 됐다. 감독 당국이 2011년 초부터 카드 규제에 나섰는데도 되레 41조원 가량 늘어났다.

   상당수 국민도 카드 폐해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설문 조사를 했더니 조사 대상자의 72.4%가 신용카드 발급 제한 제도에 찬성했을 정도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직장인 카드사용 조사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직장인들은 평균 3장 정도의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며 80% 정도가 카드결제 금액을 보고 후회했다고 답했다.

   이보우 단국대 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는 "지금 당장 카드대란과 유사한 상황이 닥칠 정도는 아니지만 언제든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카드사 간 경쟁이 심해지면 가맹점 수수료를 내려야 하고 수익을 내려면 신용대출 비율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현금서비스로 카드대란을 일으켰던 과거와 상황이 다르고 금융당국의 눈초리 또한 매서워 심각한 사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함정식 여신금융협회 조사연구센터장은 "카드대란을 겪은 이유는 무분별한 카드발급 확대 등 과당경쟁 때문이다. 이후 카드사들은 위험에 대비해 자본을 축적해온 만큼 유동성 위기가 재발하더라도 버틸 수 있다"고 낙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