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희 /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연말에 중진급 교수들 모임에서 우리가 과거 선배들처럼 영광스럽게 정년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했다가 꽤나 심각한 논쟁으로 번져 나갔다.

사실 1997년 12월 3일 210억달러의 외환 부족으로 IMF에 돈을 빌리러 갔다가 국가적 차원의 구조 조정을 당한 바 있었다. 소위 정부, 금융, 기업, 노동의 4대 부문의 구조 조정이 그것이다. 철 밥통이라던 정부 부문에도 개방형, 고위공무원단, 성과급제, 연봉제 등의 민간 관리 기법이 도입되었다. '급행료' 등과 같은 공무원 사회에서 보이던 일상화된 부패가 없어진 것도 구조 조정이라는 시장에 의한 칼날의 힘이었다. 앉아서 돈을 받던 금융기관도 서서 돈을 주는 기관으로 바뀌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자만하던 대기업도 무너졌다. 종신고용제가 무너지고, 실업이 보편화되면서 노동계에도 충격이 주어졌다. 이 영역들은 일상화된 위기를 통해 일상화된 혁신이 유도되고 있다.

반면 이 당시 대학은 구조 조정을 비켜갔다. 부실대학의 퇴출과 대학의 과잉 설립에 대한 비판으로 구조 조정의 논의가 있긴 하였다. 그러나 지역의 영향력 있는 교수들과 동창들의 로비가 동원되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다시 대학의 구조 조정이 쟁점이 된 것은 '시장의 반란'이었다. 인구 감소로 인해 입학생 수가 줄어들자 시장에서 구조 조정의 칼날이 서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취업난에 따른 대학의 존재에 대한 불신 그리고 반값 등록금 논쟁은 대학 구조 조정에 대한 시장의 선전포고였다. 정부가 구조 조정을 하면 재량의 여지가 있지만, 시장의 칼날은 무차별적이다.

여기에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국립대의 기성회비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니 학생에게 돌려주라는 판결을 하였다. 국립대의 등록금은 기성회비와 수업료로 구분되어 있다. 수업료는 국가가 정하기 때문에 전국 국립대가 동일하지만, 기성회비는 각 대학에서 정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엄격히 말하면 국가의 재정이 어려우니 학부모들이 대학에 납부하고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학부모로 구성된 기성회에서 최종적으로 기성회 예산 배정을 심의 의결하는 구조를 갖춘 것이 그러한 배경이다. 이러한 비중을 가지고 있는 기성회비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린 것은 재정의 관점에서 국립대학의 구조 조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대학재정에 대한 투명성의 요구와 등록금 인하의 요구 강도를 더하게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대학은 전 방위적으로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서 대학은 우리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위상을 견지하면서 시장의 요구를 수용하는 한편 시장을 이끌어가는 개혁을 전개하여야 한다. 우선 대학의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검토해야 한다. 고등학교의 목적이 대학 진학이 아니라, 인성 교육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도 취업만이 목적이 아니라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세계를 찾는 창조적 노력이 주어져야 한다. '반값 등록금'은 단순히 부담을 줄이자는 경제적 논리뿐만 아니라 대학의 유지에 부담할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것이라면 대학의 수준을 제고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군살빼기를 하지 않으면서 모든 비용을 학생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대학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도 확산되어야 한다. 대학은 도로, 전기, 통신과 같이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지켜가야 할 공공재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신입생 모집률, 자퇴학생의 비율, 편입생의 흐름을 그려보면 시장에서 평가되는 대학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그리고 대학의 연구에 대한 참여 수준을 계산해 보면 연구 역량도 그려진다. 객관적인 수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요구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건만, 상아탑이라는 명분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의 상징처럼 도입되었던 총장 직선제에 대해 시장에서 폐쇄적인 자기끼리의 자리 나눠먹기라는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늦게 바뀌지만 대학이 바뀌면 교육과 취업 구조, 나아가 사회 구조가 바뀌는 매우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지금의 바람을 역풍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순풍으로 만들어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