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구절은 독일의 여류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작품 '잔치는 끝났다'의 한 구절이다. 사실 이 시의 구절은 '지금은 대추야자씨가 싹트는 시절'이라는 행에 이어져 있어서 문맥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투어처럼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아마도 추락하는 것들이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역설적 표현이 주는 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날개가 있는데 왜 추락하느냐는 의문이 들지만 날개가 없는 존재는 날지 않기 때문에 추락할 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추락하는 것은 반드시 날개를 지닌 존재여야 한다는 말을 수긍하게 된다. 날개를 가진 존재는 언젠가 추락하게 될 운명인 것이다. 물론 도도새처럼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한다면 추락할 염려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도새가 멸종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인간이나 포식자들이 다가와도 날지 못한 탓도 있었을 터이니 그들은 추락보다 더 큰 비극을 겪은 셈이다.

그런데 조류가 아닌 우리 인간에게 '날개'란 무엇일까? 날개는 흔히 자유를 환기하는 기호이지만 상징적 의미는 욕망과 관련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이야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미노스왕의 노여움을 사서 미궁에 유폐되어 있던 다이달로스는 아들인 이카로스에게 새들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붙여서 탈출하게 만든다. 그런데 미궁을 탈출한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하늘로 계속 날아 올라가다가 결국 날개를 붙여놓은 밀랍이 녹는 바람에 추락해 죽고 만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이카로스의 날개는 인간의 지나친 호기심이나 과도한 욕심은 화를 초래한다는 교훈적 의미로 사용된다.

흑룡의 해라고 불리는 올해 총선과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의 장래가 결정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권력이 교체되거나 교체 중에 있으며, 유럽에서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또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세계적인 권력 재편의 해다. 이 과정에서 승천하려는 용들의 일대 격전이 벌어지고 승천하는 용들과 추락하는 용들이 연출하는 장관을 보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퇴진하고 시진핑으로 권력이 이양되고, 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김정은으로 권력이 이양되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에서는 푸틴과 오바마의 재선 여부에 따라 세계 질서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질서 재편의 시기에 한국의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있어서 유권자의 선택은 유례없이 엄중한 결과로 이어진다. 정치인들의 승천과 추락은 결국 민심에 달려 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추락하는 것은 이들 정치가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유권자, 그들의 삶도 정치인들과 함께 추락한다는 점이다. 정권 말기에 반복되는 이른바 레임덕이라고 하는 정권의 권위추락현상을 보면, 정치권력의 부패나 도덕적 타락뿐 아니라 무능과 실정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어김없이 수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내세우는 정책과 공약들은 온통 유권자들의 희망과 기대와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그 가운데서 누가 진정성이 있는 정책, 실현가능하며 또 지속가능한 약속을 제시하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이런 분별에 실패하게 되면 결국 선거 때마다 후회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거창한 공약(公約)들은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여러 경쟁자들 가운데 하나를 뽑는 선거의 속성상 후보자들의 탈락(추락)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국민들은 스스로를 '추락'시킬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점에서 유권자들이야말로 이카로스의 경고를 명심해야겠다.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공약보다는 이웃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약속,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원려(遠慮)를 가려내는 것이 '추락'하지 않는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