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희 / 가천대 석좌교수
매년 1월 하순이면 기다려지는 토론의 장이 있다. 스위스의 유명한 스키리조트인 다보스(Davos)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 The World Economic Forum), 다보스포럼이 그것이다. 필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하던 1999년 참석하면서 매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지난 90년대의 '세계화(Globalization)', 2000년대 들어와서 '기후변화(Climate Change)' 등을 세계적인 어젠다로 주목하게 된 것도 이 포럼을 통해서이며 세계의 흐름을 먼저 읽고 이를 제시한다는데 다보스포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정계·관계·재계 인사들이 한주 동안 각자에게 필요한 영감을 얻기 위해 금년 42차 포럼에도 100여개국 2천500명이 참석하였다. 그동안 다보스포럼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지지하여 왔는데, 이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일관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오기도 했다.

금년 다보스포럼 주제는 '거대한 전환:새로운 모델 형성'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강하게 제기된 자본주의 문제점과 지난해 '월가 점령운동'에서 제기한 '금융기관의 탐욕'과 '1%대 99%'로 상징되는 소득불균형 등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유력지인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도 다보스포럼을 앞두고 '자본주의 위기'를 특별 시리즈로 다룬 바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경제학자, 기업가, 작가 등 세계적인 저명 인사들이 특별기고를 통해 위기에 처한 기존 자본주의를 개선하기 위한 의견을 제시했다.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20세기 자본주의가 21세기에 작동되기 위해서는 소득격차 해소 등 개선없이는 위기가 극복될 수 없다는데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 인사들의 발표와 토론 역시 자본주의 위기의 해법에 초점이 모아졌다. 신자유주의하의 기존 자본주의가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데는 성공적이었으나, 20~30% 낙오자를 양산하는 심각한 불평등은 기존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게 했다. 다보스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자본주의 체제는 포용성이 부족했다"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해야할지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가며 많은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는데, 신뢰를 많이 상실한 영미식 모델을 중국 등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미래의 자본주의는 현재의 서로 다른 자본주의 체제가 경쟁하면서 스스로 진화해갈 것이라는 견해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이같은 기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논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날로 악화되어가는 소득 분배, 계층 이동의 어려움 등 심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중소·대기업간의 불균형, 청년실업 등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대기업 친인척의 빵집·커피점 경영 등에 대한 비판이 증폭되고 정치권에서는 경제력 집중,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개선 등 대기업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제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가오는 총선·대선에서 여·야 모두 대기업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여진다. 기존 우리 경제체제가 낳은 대기업의 구조와 불공정 행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경제의 큰 축인 대기업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세계적인 흐름인 기존 경제시스템 의 개선 논의를 정치권, 정부, 노·사 및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국판 다보스포럼을 만들어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로서는 미국·유럽 등 주요 국가가 경험한 시행착오를 피해 우리 실정에 가장 잘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