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수께끼의 답은 한국경제의 성장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경제는 추격(catch-up) 전략으로 성장했다. 즉, 표준화된 제품시장에서 선두기업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빠른 추격을 통해 그 선두기업을 밀어내어 시장지배자의 위치에 올라서는 전략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업종들인 철강, 반도체, 휴대전화, TV, 조선 등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이런 표준화 상품의 조립생산에서는 혁신역량이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뛰어난 판단력, 대규모 투자, 빠른 추진, 철저한 경영 등이 중요할 뿐,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에서 느끼는 제품의 혼(魂)과 같은 혁신적 창조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시장이 혁신이라는 무기로 싸우는 전쟁터로 변모하면서, 표준화 제품의 조립생산에서 확보한 강점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의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서구의 '작은 기업 성공론'에 주목하여 혁신에 강한 중소기업 육성을 본격화할 시점으로 생각된다. 당장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을 배려하는 '맏형님'의 의젓함을 보이지 못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쌓은 대기업의 경쟁력이 무너져도 좋다는 생각은 미숙한 생각이다. 한국경제를 키워온 수출(輸出)만 보더라도, 당장은 대기업 없이 현재 실적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미래는 현 실력자인 대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혁신역량이 강한 중소기업들을 선별해서 육성하는 방책에 달려있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들을 보완해 줄 대체 세력은 바로 높은 혁신역량을 갖춘 중소기업군(群)일 것이다.
이는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일반론과 엄연히 다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되 그 혁신역량을 엄격하게 선별해서 우수한 싹을 키우는 노력에 집중하자는 주장이다. 우수한 싹은 본래 시장경쟁을 통해 발굴되고 단련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현재 시장의 선별능력을 볼 때 당분간은 정책적으로 혁신형 중소기업을 키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여기서 핵심은 '차별화' 원리를 중소기업 지원정책에 확실하게 담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중소기업 지원프로그램은 중소기업을 온실(溫室) 속에서 키우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다. 예를 들면, 부족한 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주고, R&D자금을 지원하며, 세제혜택 등이 부여된다. 벤처기업제도에서는 인증기준을 통해 지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인증기준이 엄격하지 않아서 요령껏 외형적 기준을 잘 맞추기만 하면 되었다. 이런 정황이다 보니 중소기업 쪽에서는 체질개선이 미처 이뤄지지 못했다. 한마디로 경제활동의 제1계명인 '차별화' 원리가 없었다.
'차별화'란 잘될 중소기업과 그렇지 못할 중소기업을 구분하는 원리이다. 차별화 원리에 의해 지원이 결정될 때, 유망 중소기업들에 지원이 집중될 수 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고 해서 온정주의에 의해 평등하게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차별화 원리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우수한 싹'과 '불량한 싹'이 구분될 것이며, 이로 인해 기대하는 시장 선별력도 자연스럽게 조성될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차별화는 한국경제에서 커다란 전환인 것이다. 진정으로 우수한 중소기업이 더 많은 성장기회를 맞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가까운 미래에 한국경제를 이끄는 동량으로 자랄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