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우리나라의 2월은 1월보다 상대적으로 평균기온이 높으나 이번 겨울에는 거꾸로다. 추위의 절정기인 1월 중순 서울 기온은 섭씨 0도로 평년(-2.4도)보다 높았지만 2월 들어서는 수은주가 평균치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가장 추웠던 날도 작년은 1월 16일이었으나 올해는 2월 7일로 한랭시즌 자체가 뒤로 밀린 느낌이다. 3월이 코앞인데도 봄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올봄의 경제 기상(氣象)도 날씨처럼 변덕스러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스의 재정위기 강제수습시한이 초읽기에 돌입한데다 이란발 긴장고조가 점입가경인 때문이다. 금년부터 미국의 국방수권법이 효력을 발휘함에 따라 세계 각국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EU가 오는 7월부터 이란산 원유수입 전면금지를 선언한 터에 이란석유 최대수입국이자 심정적 동조국인 중국까지 가세할 조짐이니 말이다. 중동에서 또다시 전운(戰運)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정부의 고민이 가장 크다. 유럽발 경제부진이 점차 가시화되는 터에 중동전쟁이 재발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연말 재선은 물 건너갈 수도 있는 탓이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만 끌 수도 없는 상황이다. 매파인 공화당의 정치공세가 점증하고 미국 군부까지 우유부단한 행정부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사회에 영향력이 큰 유태인 유권자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은 묵인하면서 이란은 불용(不容)하는 미국의 이중잣대에 대한 국제적 시비우려도 걸림돌이다.

더 큰 골칫거리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정부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란에 대한 군사대응을 천명한 것이다. 미국주도의 경제봉쇄가 기존 핵시설 이전 등 이란에 시간만 벌어줄 뿐만 아니라 자칫 이란이 핵무장할 경우 무력화(無力化) 비용이 훨씬 더 클 것이란 판단이다. 이르면 3~4월중에 이란 핵시설을 파괴할 움직임마저 간취된다. 미국의 동의가 선결과제이나 낙관은 금물이다. 이란과 이스라엘간의 요인암살경쟁이 첨예화되는 터에 이스라엘은 지난 2007년에도 시리아의 핵 원자로를 임의로 공습한 적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란에 대한 독자적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탓이다.

우리나라는 원유수입 세계 5위 및 천연가스수입 세계 2위인 에너지 수입대국이다. 두바이유가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하면서 국내 석유가격도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인데 세계 원유거래액의 20%에 달하는 물량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 심지어 200달러대까지 점치는 판이다. 만에 하나 한국이 미국방수권법 적용에서 제외된다 해도 석유자급률 13.7%의 국내경제가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지난해 국내 원유수입량은 총 9억2천700만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 31.4%, 쿠웨이트 12.7%, 카타르 10.0%, 이라크 9.7%,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란 각 9.4% 등 중동지역 의존율이 무려 87.1%인 것이다.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다 해도 당분간 국제유가의 대세상승은 불문가지이다.

지난 9일 대외경제연구원(KIEP)이 발표한 '유가상승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변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비교분석'에 따르면 유가 상승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1990년대에 비해 다소 축소되었으나 대신 서민물가에 주는 충격은 더 커졌다. 즉 유가가 1%포인트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연 0.09%포인트나 오른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교통, 난방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부문이 특히 민감했다. 내수까지 침체되는 양상이어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석유 대체공급을 확약 받았음에도 물가잡기에는 역부족이란 인상이다.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중동발 대륙성 고기압이 맹위를 떨칠 확률이 높은데 4·11총선과 관련한 정치방학시즌과 겹쳐 한걱정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기우(杞憂)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