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박성현기자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준비하는 예비후보들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여기저기 지역 행사에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전통시장 등 유권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찾아가 자신을 알리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한가지. 바로 명함이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 슬로건과 주요 공약 등을 담은 조그마한 종이, 명함.

SNS 등 각종 첨단 매체가 발달하고 있지만,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의 손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명함이 한움큼씩 들려있다. 선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명함. 지금부터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 후보들, 명함 얼마나 쓸까?

 
 

지금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선거인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인천의 한 의원은 선거 당시 사용한 명함 숫자가 6만장 이상 됐다고 했다.

예비후보 등록부터 후보경선 때까지 4만장 정도 들었고, 본선 과정에서 2만장 이상을 썼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구 세대수가 5만400여세대인 점을 감안하면 각 세대별로 한 장 이상씩 이 의원의 명함이 돌아간 셈이다.

그는 "명함은 후보가 직접 유권자의 얼굴을 보며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홍보수단"이라며 명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올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후보들의 명함 사용량을 이 의원의 사례를 바탕으로 짐작해 보면, 최소 360만장, 최대 540만장 이상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선거명함은 언제쯤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대한민국선거사 제5집'의 1988년 진행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내용을 보면 "선거운동 방법에 대해서는 큰 의미가 없었던 '후보자 성명 게시'를 폐지하고 대신에 '소형인쇄물'을 새로 도입했다"는 언급이 있다.

소형인쇄물의 종류와 수량을 규정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이 때부터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명함이 공식적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60~70년대에도 선거명함을 제작한 적이 있다"는 경력 40년 가량의 인천지역 인쇄업자도 있어, 정확히 언제부터 선거용 명함이 사용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도 "명함이 언제부터 선거에 사용됐는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선거 명함은 한때 법적으로 금지된 적도 있었다.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진행과정에서 선거인쇄물과 관련한 탈법·불법 행위가 발생한 것이다.

선거명함은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배부하도록 돼 있었지만, 후보자들은 단속의 손길을 피해 주택가 골목부터 아파트 우편함과 계단, 엘리베이터, 주차차량의 앞 유리창까지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것이다.

이를 신고하는 제보가 선관위에 잇따랐지만 단속을 하더라도 배포자를 찾긴 어려웠다.

이 때문에 1998년 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명함형 소형인쇄물 제도는 폐지되기도 했다.

그 뒤 2002년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다시 관련 법령이 고쳐져 명함은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 선거명함은 '전략'이다

선거에 사용되는 명함은 이미 전략적으로 기획되고 있다.

명함이 '그 후보의 얼굴'인 만큼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할 매체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각 당은 선거명함을 '이렇게 만들면 좋다'는 내용의 홍보매뉴얼을 제작해 선거 출마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2006년 진행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A당은 홍보매뉴얼을 통해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직접적으로 주는 유일한 매체임을 명심해 앞면은 포스터의 이미지를 살려줄 수 있는 내용으로, 뒷면은 핵심 선거테마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제작"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B당의 교육자료엔 선거 명함과 관련한 보다 상세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인상적인 명함으로 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면 그 만큼 효과가 크다 ▲향기나는 명함 등으로 신선하고 산뜻한 명함이 유권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유권자의 성별, 직업별 등에 따라 여러 종류의 명함을 만들어 놓고 상대에 맞게 배부하는 것도 좋다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라면 유명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명함에 넣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명함 사진 속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게 해 유권자들과의 시선의 교감을 만든다 등의 내용이다.

# 선거명함의 미래는 없다? '천만에~'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지면서 선거운동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이를 이용한 선거운동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후보 자신에 대해 보다 쉽게,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매체가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선거운동 방식이 첨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2012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후보들의 손엔 여전히 자신의 명함이 들려있다.

'찢겨진 명함을 가슴에 안고'라는 한 정치인의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후보들의 명함은 버려지고 찢겨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명함은 선거운동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매체라는 평가가 많다.

아무리 발달한 매체를 통해 선거운동을 해도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명함 한 장 건네는 것 만큼은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천시의회 제갈원영(한·연수2)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명함 만큼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는 매체는 없다고 본다"며 "아무리 다른 매체가 발달해도 적어도 명함의 미래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현준기자